왜 아직도 수건을 접는가 — 버텨내는 손끝이 만드는 경

by 피스타치오


"왜 아직도 이 일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세탁실의 풍경을 떠올린다. 이 질문은 사실 수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에 대한, 사업가로서의 실존적인 물음이다.


수건을 접는 시간은 늘 비슷하게 찾아온다. 게스트들은 이미 떠났고, 시끄러웠던 복도는 정적에 잠기며, 빗발치던 전화벨 소리도 잦아든 뒤다. 하루라는 치열한 전투가 어느 정도 끝났다는 신호처럼, 나는 세탁기에서 갓 나온 수건들을 꺼낸다. 하나씩 펴고, 각을 맞추고, 반듯하게 접는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길 일도, 누군가에게 대단한 업적이라 자랑할 일도 없다. 그저 오롯이 나만이 아는 고독하고 정직한 의식이다.아무리 넉넉히 준비해도 수건은 늘 기이할 정도로 부족하다. 어제 분명히 채워 넣었던 수량은 오늘이면 어김없이 줄어들어 있다. 사라진 수건들이 어디로 갔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신 내 손에 남아 있는 수건을 묵묵히 접는다. 사라진 것을 붙잡으며 분노하기보다, 남은 것을 정리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하며 배운 가장 아픈 방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매번 속이 상한다. 휴지처럼 쓰이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수건의 잔해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이 물건이, 이 공간이 이토록 가벼운가"라는 질문이 차오른다. 하지만 나는 상대에게 책임을 묻고 비용을 청구하기 전에, 먼저 수건을 접는다. 이것이 경영적으로 맞는 일인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며 깨달은 단 하나의 진실은 있다. '규칙'은 공간을 지켜주지만, 나의 '태도'는 무너지는 나 자신을 지켜준다는 사실이다.수건을 접는 손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고백이 담겨 있다. 이 수건은 오늘 하루의 풍파를 무사히 견뎌냈다는 증거이며, 다시 누군가의 손에 닿아 가장 깨끗한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나는 직접 수건을 접는다. 직원을 시키거나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가끔은 내 손으로 직접 이 감촉을 느껴야만 한다. 수건을 접고 있어야만 이 일이 숫자나 매출이라는 차가운 데이터가 아니라, 결국 사람을 향한 따뜻한 공간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경영의 중요한 결정들은 화려한 회의실이 아니라 이 습한 세탁실에서 내려진다. 고개를 숙인 채 수건의 각을 맞추다 보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난제들의 답이 혼잣말처럼 툭 튀어나온다. "아, 이건 이제 그만 감당하자." "이 부분은 더 단단해져야겠어." 수건을 접는 시간은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을 분류하는 시간이고,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선택하는 시간이다.내가 오늘도 수건을 접는다는 것은,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강력한 선언이다. 사라진 수량에 집착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내일이라는 하루를 다시 열어보겠다는 의지다. 수건을 접는 행위는 내가 아직 이 일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이 공간을 결코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수건은 오늘도 부족할 것이고, 내일도 누군가에 의해 쉽게 버려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어김없이 수건을 접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며, 내가 나의 사업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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