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게 꼭 나여야만 하나요? 이해가 안돼요

이런 일, 저런일이 있다

by 자표심

-뇌졸중.

1월 초 박상무 님이 뇌졸중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임원 승진 후 한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평소 부하직원을 아끼고, 사람을 좋아하는 호인이었다. 얼굴은 천사같이 선했고, 미소를 잃지 않아 직원들은 항상 같이 일하고 싶어 했다.


출근해야 하던 날 아침 그는 쓰러져 있었다. 전날 밤부터 말이 어눌해지고 있었지만 잘 몰랐다.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우뇌 운동중추 손상으로 안면마비가 왔다.


혀를 움직이기 어려워 말을 하지 못했고, 처음엔 물도 넘기기가 어려웠다. 종이에 써서 의사표시를 해야 했다.


다행히 보행과 손 사용엔 문제가 없었다.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도 정상이었다. 생각이 멀쩡한 것을 천운으로 여겼다. 생각이 살아있다는 것은 행운이었지만, 그것이 힘들게도 했다.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알아버려, 좌절이 왔다

그는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음을 알아차린 것처럼 자신을 알아버렸다.


병세를 인지하고 두려웠다. 자신이 말을 못 한다는 믿지 못할 사실에 좌절했다.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무서웠다.


웃을 수 없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표정 없이 부은 얼굴을 거울에서 날마다 확인했다.


돌아가지 못하는 직장이 생각났다. 테니스 치며 땀을 닦던 자신의 얼굴이 지나갔다. 갓 성인이 된 딸아이가 갑자기 불쌍해졌다.


간호하는 아내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면서는 마음이 무너졌다. 우울증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온화한 미소의 그는 사라졌다. 긍정적이던 그가 변했다.


처음엔 직원들이 병문안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병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렇지만, 직원들이 보고 싶었다.


-뇌의 가소성을 믿고, 재활치료를 했다

몇 달 입원 후 퇴원한 박상무 님은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담당 언어치료사는 재활 이론을 몇 가지 알려주고 발음 연습을 시켰다. 어떤 발음은 아주 어려웠다.


사모님은 잘 안 되는 발음 연습을 천천히 더 하는 게 좋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언어치료사가 어려운 것만 자꾸 시킨다고, 아내에게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했다. 발반사로 몸을 회복시킨다는 데도 가보고, 아내와 날마다 걸었다.


뇌세포가 죽으면, 기억 제조공장인 해마를 제외하고는 재생이 거의 안된다. 그렇지만 그 주변의 살아있는 뇌세포들이, 죽은 세포를 우회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훈련과 자극을 계속하면 뇌의 구조가 변한다. 기능 회복이 가능하다. 뇌의 '가소성'( 可塑性 plasticity ) 덕분이다. 변형 가능한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듯이. 믿음을 갖고 재활치료를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너 달이 흐른 후, 그분을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모님이 토마토 주스에 빨대를 꽂아 대령했다. 아메리카노 같은 맑은 음료는 아직도 목으로 넘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활치료 덕분에 드문드문 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나는 박상무 님에게 휴대용 마이크 노래방 기기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의 노래도 신나게 따라 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노래는 기분을 변화시키고, 발음 연습도 되니까.


그분은 몇 마디 말을 겨우 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더 힘들어하시겠지. 걱정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몸을 그분 쪽으로 기울였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나..는~ 이해가. 안돼."

더욱 귀 기울여 다음 말을 듣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살다 보면 이런 말을 한 번쯤 하게 된다. 암 같은 중병에 걸렸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안 된다. 왜 내게 이런 불행이 닥치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건데? 무슨 악을 저질렀냐고? 그리고 왜 남들은 멀쩡한데,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해? 알고 싶다. 미치도록 알고 싶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세상을 주관하는 당신이 그랬냐고? 왜 그랬냐고? 도대체, 왜? 왜 그게 꼭 나여야만 하냐고?


나도 국민학교 4학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똑같은 말을 했다.

"왜 엄마가 죽는데? 왜 내 엄마가 죽는 건데? 왜 남들은 멀쩡한 건데? 이해가 되지 않아~"


-이런 일, 저런 일만 있을 뿐이다.

29세 상원의원이 된 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해 안 된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의 책상 위에 있다는 '딕 브라운' 만화에서 바이킹 '해이가르'도 묻는다.



"Why Me?"

신은 대답 한다.

"Why Not?"


'왜 내게 이런 일이?'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인류 전체가 동시에 같은 중병에 걸리고, 같은 날 아이를 잃고, 같은 시각에 배우자를 떠나보낸다면, 이런 물음은 안할 수도 있지만.


지구상에는 재앙 같은 일들이 매일 넘쳐난다. 이해 안 되는 불행한 일들은 반복된다. 받아들일 수밖에.


이미 벌어진 일.

의미를 찾을 여력이 없을 때.

나는 되뇌인다.

"이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이란 없다.

이런 일, 저런 일만이 있을 뿐이다."



< 참고자료 >

아내·딸 잃고 神 원망한 바이든, 그런 그를 일으킨 ‘두컷 만화’, 중앙일보, 2020.11.10



< 이해원 - 시간에 기대어 >

https://youtu.be/VhHYROJA6xQ

이해원 - 시간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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