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그래함 설교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Twenty two years ago, I was here ~ in Korea."
"22년 전에 저는,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It was a Christmas time."
"그때, 성탄절 땝니다."
"And It was very cold."
"굉장히 추웠습니다."
"I've never been so cold in all my life"
"일생동안 그렇게, 추워본 적은 ~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의 설교는 '한국 이야기'로 출발했다. 그는 청중을 22년 전 과거의 한국으로 이끌고 갔다. 청자들은 한국인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무리들은 낯선 남의 나라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왔다. 빌리그래함은 청중이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간파하고 있었다.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고, 한국 통역이 귀에 들어왔다.
1973 빌리그레함 전도대회 :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 2019.2.17 (https://koreanchristianity.tistory.com/294)
-빌리그래함 전도집회를 정부도 지원했다
1972년 말엔 유신 헌법(維新憲法)이 통과되었고, 박정희 정부 주도로 농촌에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이 전 국민운동으로 퍼지고 있었다. [1]
<'73 Crusade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는 1973년 여의도 5·16 광장에서 개최됐고,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통금이 해제되고, 특별 버스가 운영됐다. 공영방송이 중계했으며, 공병대와 육군 군악대가 집회를 도왔다." - 배덕만 교수, 빌리 그레이엄의 명과 암, 뉴스앤조이- [4]
5·16 광장에는 가난했지만 잘 살고 싶은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경제적 부의 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당시 대형 교회의 메시지에 귀를 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교성으로 인해 사후 영혼의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원했다. 선진 미국인의 목소리로 신앙을 확인하고도 싶었다.
빌리그래함은 그들에게 먼저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고 설교했다.
-시골에서 고모 내외가 올라왔다
1973년 6월 3일은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마지막 날이었다. 이 집회에 참석키 위해 시골에선 들꽃뫼 고모와 고모부도 올라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집회 당일 나는 우리 집 식구들을 따라 여의도 5·16 광장에 따라갔다. 저 멀리 국회의사당을 모방한 순복음교회의 돔이 보였다. 빌딩 한 두 개 외엔 허허벌판이었다.
목장드림뉴스 - http://www.p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9
우리는 110만 명의 어마어마한 인파에 떠밀려, 오늘날 IFC빌딩 신한금융투자 본사가 있는 여의도역 쪽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선망했던 미국인 빌리그래함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고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Billy Kim)가 통역을 했다. 빌리그래함보다 더 빌리그래함처럼 통역한 빌리 김 목사는 그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지만 설교 듣는 일엔 이미 익숙해 있었다. 많은 목사들과 부흥강사들의 설교 형태를 대강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를 따라다닌 영향이었다.
빌리그래함 설교는 통역하기 쉬운 단문이었다. 짧게 짧게 말을 이어갔고,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말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엔 감동이 있고, 몸동작이 있고, 냄새와 촉감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빌리그래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DMZ를 방문했습니다. 북한군은 수류탄을 아군 쪽에 던졌습니다. 한국군 1명이 3초 후에 터지는 폭탄에 몸을 던졌습니다. 장례식 설교에서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이 인용됐습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회색 양복에 흰 셔츠, 감청색 넥타이. 양복 속 셔츠 손목엔 커프스 버튼. 수수하지만 갖춰 입은 빌리그래함은 오른 주먹에 검지 손가락을 뻗은 손을 들어 힘차게 내리치며 말을 쏟아냈다. 검은 성경책을 잡은 손은 때때로 위로 올라갔다.
청중은 성경을 왼손에 들고 점차 사력을 다하는 스피치를 보고 듣고 있었다. 그를 신뢰했다.
그의 말은 단순했기에 강력했다.
"여러분들에게는 지도를 할 수 있는 지도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지적인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국민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아세아를 변경시키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움츠려 든 어깨를 반복적 언어로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는 청중 속 잠재력을 일깨웠다. 보물 같은 재능과 지적 능력을 사용해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사명감을 심어줬다.
듣는 청중은 가슴이 부풀었고, 자존감이 살아났다. 갑자기 전 세계가 다가왔다.
-2만여 명이 회심했다
쉽지만 강력한 그의 이야기식 설교에 8살인 나도 마음이 들떠 있었다.
태양이 떨어지고 있어도 햇볕은 뜨거웠다. 나는 깔고 앉았던 신문지로 배를 만들어 머리에 썼다.
설교는 30분간 이어졌다. 내 근처 스피커에서 먼저 말소리가 나면, 저 멀리 단상 쪽 스피커에서 뛰쳐나온, 똑같은 소리가 뒤이어 도착했다. 나는 이중으로 들리는 설교 말소리 하나만 들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의 설교 마무리에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자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가 일어났다. 단발머리 밖으로 귀를 살짝 보인 흰 교복의 여학생이 일어섰다. 검은 모자에 하늘색 하복을 입은 남학생, 흰색 하복을 입은 남학생이 일어났다. 오른 가슴에 하얀 이름표를 단 짧은 머리의 군인, 반팔 긴팔 차림의 직장인, 붉은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숙녀, 애기를 안은 엄마 등 2만여 명이 일어났다.
그날 어떻게 살아서 집까지 왔는지.
나는 설교에 대해 생각했다.
스피치에 대해 생각했다.
연설에 대해 생각했다.
웅변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 아래 빌리그래함 설교 동영상을 보면, 윗 글이 더 잘 보입니다.
< 참고자료 >
■ 1973년 빌리그래함 설교
https://youtu.be/h6K827rmM4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