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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Sep 18. 2022

추억, 깨진 틈에 빛이 새어 나온다

추억 재구성하기 - 모든 감사



독자가 묻는다. "왜 내가 당신의 글을 읽어야 하나요?"

나는 뭐라 답할까.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시겠어요? 그대 속으로"



-아이야 무엇을 느꼈니

  지금도 철없고 영원히 그렇겠지만, 철없던 어릴 적 장면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 기억을 끄집어 헤쳐 본다. 그 속에는 슬프고 분노에 차있는 그림자 아이가 있고, 천진한 햇빛 아이도 있다.


  내 안에는, 알아주지 않고 돌봐주지 않았던 아이가 산다. 나는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공감하고 이해해 주려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 속 빛바랜 사진들을 꺼내고, 창고를 뒤져 앨범의 먼지를 떨어내야 한다.


  나에게, 내 아이에게 물어본다.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거니?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지? 질문을 던지고 기다려 본다. 아이가 어떤 말을 해 올까, 어깨와 귀를 기울이고,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때론 적극적으로 과거의 기록물들을 탐색한다.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헤매듯이.


-지난날의 내 속에 들어가 본다

  어릴 적 내 캐릭터에 빙의되어 그 순간을 다시 살아본다. 그때의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소리와 등허리를 녹이는 반가운 햇빛을 느껴본다. 어릴 적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봄날의 차갑고 미지근한 빗방울을 맞아 본다. 눈밭을 굴러도 끄떡없다는 초록옷을 망설이며 입어보고, 끈 달린 검은 벙어리장갑을 끼고 머리를 압박하던 털모자도 써 본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 입김을 호호 불고, 콧김 속 수증기를 살펴본다. 때때로 놀라고 가끔 벅찼던 쿵닥쿵닥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긴장해 흥건해진 손바닥을 닦아 보고, 사랑 노래와 한 맺힌 아우성을 들어본다. 뜨겁고 식은 눈물 온도를 느껴보고, 야단치던 소리에 귀 막고 고개 저어 본다. 향긋한 여자 화장품 냄새와 를 찌르는 악취를 맡아보고, 칭찬 소리로 벅찬 가슴에 손을 대어 본다. 


-나를 밖에서 찾을까, 내 안에서 찾을까

  멀고 힘겨운 학교 길을 걸어 보고, 집 뒤 푸르고 누런 풀밭을 펄쩍펄쩍 뛰어 본다. 강변북로 철조망을 기어 올라 쏜살같이 건너 본다. 블록 담을 쓰윽 문대 보고, 꺼끌해진 손가락의 예리한 통각을 느껴 본다. 나와 타인을 비켜가지 않았던 비극을 둘러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 우리 부모와 가족 친척 친구 그리고 이름도 잊힌 그들에게 무슨 일들이 지나갔던 걸까.


  지나간 시간들은 떠나지 않고 내 속에 잠재해 있다. 그것에 프로그래밍된 나는 영문 모르는 반응으로 헛발질도 하고 있다.


-재생 대신 새로이 재구성한다

  내 이야기 속엔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내 취약성이 들어있고, 의미없는 꿈틀거림과 어쩔 줄 모르는 망설임도 가득하다. 교훈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내 얘기를 인내하며 들어주는 독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소음공해로 생각지 않고, 나를 참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하고 고맙다.


  내 과거를 돌아보고 추억을 회상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 알게 된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써 내려간다. 졸작이라 생각하니까 써 내려간다. 


  죽는 순간까지 나와 함께 있는 기억과 추억이지만 점점 바래져 간다. 내 기억을 잡아놓지 않으면, 영영 소실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기록해 본다. 말소리는 공연장 음악처럼 우주 속으로 사라지지만, 기록은 당분간 인간 세계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완벽히 재생할 수는 없다. 재구성할 뿐. 글을 쓰며 덧대고 새로운 재료로 비슷하게 복원할 수만 있다. 불에 타 무너진 옛 궁궐을 현재의 재료로 개축하는 것과 같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동안 추억에 새로운 해석이 부가되기도 한다. 새로운 해석에 의미가 부여되면, 자신을 보는 관점이 변하고, 내 존재가치가 고양되기도 한다.


-추억 회상은 감사의 기회다

  추억을 회상하는 글을 쓰다 보면, 때론 수치심, 때론 부끄러움, 때론 분노를 재경험할 수도 있다. 과거의 취약했던 나, 엉성했던 나를 만나면 당황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나를 받아줄지 외면할지, 용서할지 부끄럽게 놔둘지, 다시 선택할 수 있다. 


  추억을 떠올리고 감사할 수도 있다. 내 속 사람이 하고픈 모든 감사는 지나간 추억에 대한 것이니까!


  흘러 떠내려가는 삶이지만, 추억을 쓰는 동안 어릴 적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슬픔과 분노의 틈새로 밝은 빛을 본다. 왜 밝으냐고? 지금 빛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빛이 어디 있냐고? 그 건 나의 몫이고 그대의 몫이다.


  내 얘기를 엿보고 듣는 독자들은 징검다리 하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자신만 아는 추억의 세계로 건너갈 징검다리.


그리고

씨를 뿌려보자.

아름다운 추억의 꽃씨를 뿌려보자. 

물을 주고 온기를 전해보자.

꽃이 피면

즐거워하자.


^.^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에 감사하고, 아름답지 않은 기억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 그 시절을 잘 극복했기 때문이다. 과거가 어떤 기억으로 남든, 그건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다니엘 레티히『추억에 관한 모든 것』 p.347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https://youtu.be/oTfG3zkxwlg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In the twilight glow I see her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When we kissed goodbye and parted

I knew we'd never meet again


황혼은 붉게 물들고
빗속에 우는 그녀의 푸른 눈을 본다네

키스로 이별할 때

우리가 다시는 못 만난다는 것을 알았지.


Love is like a dying ember

Only memories remain

Through the ages I remember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사랑은 꺼져가는 장작불 같고

기억만이 남아있네

많은 세월 동안 나는 기억하지

빗속에 우는 푸른 눈을


Someday when we meet up yonder

We'll stroll hand in hand again

In a land that knows no parting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언젠가 우리 저 세상에서 만나면

다시 손 잡고 거닐겠네

이별을 모르는 나라에서

빗속에 우는 푸른 눈이여.


Now my hair has turned to silver

All my life I've loved in vain

I can see her star in heaven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이제 내 머리칼은 은발이 되었고

내 모든 삶. 헛된 사랑을 했다네

하늘에 있는 그녀의 별을 볼 수 있지

빗속에 우는 푸른 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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