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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Dec 13. 2022

효숙이는 등대지기를 불러 주었다

노래엔 마법이 숨어있다

※ 본 글은 브런치 북 <나의 추억사용법> 11번. 2학년, 효숙은 거룩한 최면을 걸었다 와 동일합니다.

메거진 <음악 노래 공연> 쪽으로 분류하기 위해 제목을 바꾸어 발행합니다. 감사합니다.



1. 등대지기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


  남정국민학교 2학년 내 짝, 효숙이가 노래를 불러 준다.


  시야는 저 먼 곳을 향했다. 배꼽 근처에 두 손을 모았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효숙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 옆에 앉아 고개를 돌려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가사는 신비로웠다. 추운 겨울인가 보다, 달 그림자도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 노래하는 동안, 나는 그냥 얼어붙었다.


  동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시켰었지. 나도 오디세우스가 된 건가. 효숙이의 소리는 하늘에서 탄생한 음악 같았다.



2. 효숙아 한 번 불러 볼래?


  '물결 위에 차고?' '물결 위에 자고?' 부분은 헷갈리게 들렸다.


  머릿속에서 프로세싱을 했다. 당연히 물결 위에 달 빛이 멈춰 있으니, '자고'가 맞아. 아니, 앞에 얼어붙은 겨울이 나오잖아. 그럼 물결 위에 오른 차가운 달빛이니 '차디차다'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잠깐 스칠 정도로 노래는 천천히 흘렀다.


  '한겨울에 거센 파도' 이 것봐, 자꾸 겨울이 나오잖아. 그러니 아까 그 건 '물결 위에 차고'가 맞아. 쉿 조용조용. 그냥 좀 느껴봐. 너는 무슨 애가 그리 생각이 많니? 응, 알았어. 조용히 해 볼게. 내 속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효숙이는 KBS 어린이 합창단원이었다. 효숙이에게 '얼어붙은 달그림자'로 시작하는 노래를 알면 불러 보라고 했다. 과연 들어줄까?


  "효숙아, 너 KBS 합창단원이니까, 한 번 불러 볼래?"



3. 효숙의 최면에 걸렸다


  효숙은 몸을 가다듬은 후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쉬는 시간이었다. 까맣고 맑은 그녀의 눈은 동글거렸다. 서늘한 공기를 타고 피리소리처럼 노개가 귓속으로 밀려들었다. 얘가 정말 불러주네? 나 같으면 창피해서 남 앞에서 노래 안 할 텐데. 그런데, 어쩜 이렇게 노래가 동그란 원을 연속해 그리듯 나올까.


  다른 애들 서너 명도 자석처럼 효숙이 근처로 끌려왔다. 얼어붙어 고체 덩이가 되었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노래는 점차 잔잔함에서 벗어났다.


  "지키는 사람의♬"


  최고조가 나왔다. 지킨다. 사람이 지킨다. 지키는 한 사람이 있다. 겨울밤, 달, 물결, 섬 등 자연에서 사람으로 화면은 이동했다. 그리곤 명령한다.


  '생각하라.'  

  등대를 생각하라가 아니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라. 

  그 마음을 생각하라. 


  생각하라니 정말 생각해야 했다. 시키는대로. 효숙이의 최면에 걸렸다.



4. 노래는 거룩했다


  찬송가인 줄 알았다.  


  '거룩하고'라는 가사. 이 것은 세상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가 아닌데, 여기서 거룩이 나오다니. 세상과는 단절해야 거룩이잖아. 이 땅이 아닌 천상의 거룩. 교회 어른 예배에서도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라는 찬송가 불러 봤잖아. 이 노래 아마 찬송가였을 거야.


  3/4 박자인 등대지기엔 반박자 8분 음표가 안 나온다. 거의 한 박자 4분 음표와 두 박자 2분 음표로 구성돼 있다. 노래가 서두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는 단절된 세계라 그러겠지.


  천천히 오르내리고, 한 번씩 쉬었다 가는 노래는 재촉하지 않았다.


  효숙은 나보다 약간 작았다. 얼굴은 동글동글하고, 피부는 까무잡잡하지만 윤기가 났다. 입술은 약간 도톰했다.



5. 효숙이는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목구멍 저 깊고 높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흔들리는 소리들.


  딱딱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이어 나왔다. 노래를 듣고 있는 나도 신기했다. 어떻게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었을까. 마음 시선은 먼 곳을 향했다. 잔잔해지고 평화가 왔다.


  효숙이 노래는 마법이었다.


  그날 이후로 효숙이는 한 번 더 노래를 들려주었다. 같은 노래를.


  그녀가 노래한 것은 내가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효숙이가 승락했고.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는 이가 받는다. 찾는 이가 찾는다.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린다.


  신과의 관계에서도, 인간 사이에서도 두루두루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라는 말은 없다.



6. 효숙이는 추억이 되었다


  구한다고 반드시 받는 것은 아니다.

  찾는다고 반드시 찾아지지도 않는다.

  문을 두드린다고 반드시 열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바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게 좋다.

  그럼 가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효숙이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를 위해. 착각일까. 


  노래를 불러준 효숙이가 마음 문을 두드린다.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기억 속에 잠재한 효숙이를 살려낸다.


 고마운 효숙이.

 단발머리 빛나던 효숙이.

 밝고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준 효숙이.



<윤하&레이어스클래식 - 등대지기>


윤하&레이어스클래식 - 등대지기

표지이미지 :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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