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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Dec 15. 2022

[노래] 우울한 건 모두 파란 하늘에 묻어버려

관문을 건넜다

  아래 노래가 달려 있습니다.


1. 그녀만 생각하라


  띡띠띡띠쀼~

  철커덕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의 옅은 화장기가 보였다.


  과하지 않은 입술색과 투명에 가까운 파운데이션 색.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외출했었나 보다. 나는 마스크를 걸친 채, 최대한 입을 찢고 새우눈을 해 보였다.


  "잘 있었어?"

  "응, 왔어요?"


  방에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물었다.


  "오늘 내 생각했어요?"


  띵~. 가슴이 덜컹. 신경이 떨리고, 미세한 땀이 손바닥 위로 송골 올랐다. 따져 묻는 억양은 아니었다. 조용하고 중립적인 말투였다. 천만다행이었다.


  "엉? 으~ 응."


  나는 안방으로 피신했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 DB를 뒤졌다. 『유혹의 기술』에선 뭐라고 했지? 로버트 브라운 님.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죠? 그냥 하얗다. 10년 전에 읽고 던져 버렸던 책이라고 토라져 버린 건지 아무 말도 없다.


  이 책에서 배운 건, '그녀를 위해 헌신하라' '그녀만 생각하라'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엔.



2.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책 내용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생존본능에 머릿속 경광등만 빙글번쩍 빙글번쩍 돌았다. 살아야 한다. 그래 나는 사람이야. 사는 게 사람이야. 어떻게 해서든 나를 구원해. 안방 밖으로 안 나갈 수도 없었다. 방에서 나와 바로 화장실로 가려는데, 아내가 또 물었다.


  "내 생각했어요?"

  "응, 해... 했어."


  거짓말 탐지기 단자를 열 손가락에 끼고, 백열전등 갓이 중간까지 내려온,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내가 보였다. 붉고 노란 불빛은 담배연기와 함께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곧 들통날지도 몰라. 생각 안 했다고 말했어야 했나. 괜히 했다고 했네. 그다음 질문이 또 들어올 텐데.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을 텐데. 나는 그런 거 어려운데.


  "무슨 생각했어요. 구체적으로"


  취조실 형사가 책상을 탁 치며, 다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언제나 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고 교양있게 말했다. 그래도 내 얼굴 근육이 풀렸다. 헛웃음이 돌았다. 표정은 최후 보루다. 들키지 말자. 얼굴을 숙이고, 고개를 돌렸다.



3. 사랑한다면 이래야 하는 거 아냐?


  "왜 자꾸 물을까. 그냥 생각했어. 그럼, 여신은 내 생각했어?"

  "말 돌리지 말고요. 내가 묻는 거 아직 안 끝났어요"
  "알았어"


  "내 생각 언제 했어요?"


  육하원칙에 따라 시나리오를 짰어야 하는 건데. '언제'와 '어디서' 정도는 생각해 놨어야 하는 건데. 얼떨결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응. 집에 오면서 생각했어"


  결혼한 후 직장에 가면, 아내 생각이 안 났다. 내가 그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사랑한다면, 눈뜬 동안에 그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직장에서 그녀가 생각나지 않으니 혹시 내가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러다 집으로 향하면 아내 생각이 났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


  아무튼 집으로 향할 때는 조금이라도 아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4. 장애물을 건넌다


  "나에 대해 무슨 생각했어요?"
  

  언제·어디서는 답을 했고, 이제 '무엇을( What )'이 나왔다. 무얼 생각하나요. 이선희 노래 '아시나요'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


  머릿속 메모리 스캔은 실패했다. '오늘'이란 말이 'AND 문'으로 연결된 것이 문제였다. '오늘'을 떼어버리고 찾으면 될 것을. '평소 여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니?' 현재형으로 문장을 바꾸고, 신경세포의 기억 배열을 다시 검색했다.


  "응. 오늘 여신이 어떤 맛있걸 해 놓았을까 하는 생각"

  "알았어요. 밥 먹어요"


  음, 장애물을 잘 넘어갔다. 내가 기특했다.



5. 최후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밥 먹는 내내 왼쪽에 앉은 아내를 보지 않았다. 숟가락을 입에 넣고는 오른쪽을 보면서 밥알을 씹었다. 내가 대답을 잘 못한 건 아닌가 보다.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아내가 또 물었다.


  "내가 무서워요?"


  최후의 관문이 남아 있었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아내가 무섭다는 말. 나는 아내가 묻는 말이 더 무서웠다. 대답을 회피해야지. 아내가 만든 동그랑땡을 집어 들었다.


  "이거 맛있는데"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화제를 돌리자. 불을 끄자.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 이 아픈 가슴을 ) ♬ 한마음의 가슴앓이가 한 바퀴 돌아나갔다.


  "거기. 자기가 좋아하는 새우 넣었어요"
  "오. 새우였구나. 맛있네"


  새우가 삐져나온 걸 이미 봤지만, 말로 한 번 읊어줬다. 새우 동네 냄새가 났다. 고래가 떠올랐다. 한 입 베어 물자, 새우등이 터졌다.
   

  "정말 내가 무서워요? 싸우기 싫은 거예요?"


  둘 중에 하나 고르란다. 양자택일이라. 주관식보다 쉽다. 고마웠다. 아무 생각 없는 나를 배려해 주다니. 사실, 아내가 무서운 건 아니지. 이런 상황이 무섭지.


  "싸우기 싫은 건데"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잠시 경기를 중지시키고 있었다. 비디오 판독 중인 듯했다. 그리곤 판정을 했다.


  ....

  ....


  "피곤할 텐데 쉬어요"


  앗싸아.


ps 1.

  아내가 이 걸 물은 건, 내가 아래 말로 비수를 먼저 꽂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죽으면, 그 다음날 뒤도 안 돌아보고, 재혼할꺼야"


  나는 평소 이런 방식으로 말을 했다. 먼저 죽지 말고, 건강관리 잘하고, 오래 살으라는 속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듣는 아내는 '뒤도 안 돌아 본다. 재혼한다' 이 말로 가슴 아파했다. 남편의 말에서 사랑이라곤 0.1%도 찾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은 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끄물끄물하다.




ps 2.

  아래 노래를 클릭해서 들어 본다. 우울 바이러스(病毒)가 저 멀리.

  왜냐, 자표심이 또 불렀으니. 미친 척하고.  

  

< 카드캡터체리 - 자표심 >



< 카드캡터체리 오프닝>

1.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말할 수 없어 말하고 싶은데 속마음만 들키는걸

내 사랑에 마법의 열쇠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


( 후렴 )

catch you catch you

catch me catch me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 (그만)

우울한 건 모두 파란하늘에 묻어버려

오늘도 너에게 달려가는 이 마음

난 정말 정말 너를 좋아해


2.

눈을 감으면 누군가 내곁을 스쳐가는 느낌인걸

눈을 떠보면 바람같은 너의 향기만이 가득한걸

내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어디서도 한 눈에 널 알아볼수 있어


위 자표심 노래의 원곡은 아래 클릭.

< 카드캡터체리 오프닝(Catch You Catch Me 2020Ver.) - 정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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