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일이 안 풀리는 친구를 볼 때 최고의 위로 방법은 군말 없이 고깃집에 데려가 고기를 사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저 농담으로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이 방법은 진짜다. 힘들었던 일을 옆에서 들어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역시 좋은 위로가 될 수 있지만 대개 말은 말에서 끝나는 법이다. 위로를 받을 때는 잠깐 기분이 풀리다가도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들 때면 낮에 들었던 위로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누가 힘든 나를 위해서 뭔가를 사주거나 행동으로 나서면 그 일은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더 위로를 받지 않아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기운이 생긴다.
왜 그런 걸까. 혹자는 돼지고기에 트립토판이 풍부해서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생리적인 효과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건 좀 너무 진지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보다도 나는 누군가 나를 위해 그만큼 애쓴다는 걸 증명하는데 그만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걸 눈으로 볼 수 있게끔 하기에 말로 하는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돈을 주고받는 일이 지나치게 세속적인 것처럼 그려지고 욕망을 추구하는 모양새로 그려지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감성적인 영역에서 물질적인 영역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 못지않게 물질인 몸이 제 기능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던 나는 병을 앓고 있을 때 뭔가를 떠올리기는커녕 그저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몸에 기운이 없거나 아프면 무슨 생각을 해도 금방 고통에 일그러진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사고와 신체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심신이원론’을 주장했지만, 사실 우리의 생각이 뇌에서 시작한다는 걸 상기하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보다는 스피노자의 ‘심신평행론’이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더 타당해 보인다. 몸과 생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니까.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 몸을 잘 보양하고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곧 생각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 자아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여서, 몸만 잘 챙긴다고 해서 건강한 자아를 유지할 수는 없다. 스피노자의 ‘심신평행론’도 ‘일원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평행’을 강조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를 생각해보면, 걱정 때문에 입맛도 떨어지고 꼼짝도 하기 싫어진다. 아무리 고기가 최고의 위로라고 한들, 여기서 누군가 내 상태를 보고 ‘당신 당장 먹고 뛰어야 합니다’라고 강제로 음식을 떠먹인 뒤에 러닝머신 위에 놓으면 내 우울함이 사라질까. 신체적으로는 합당한 대처를 한 셈이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치유되지는 않는다. 몸을 챙기는 것 말고도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사람의 마음까지 치유할 방법이 필요하다.
일본의 만화 <배틀로얄>에 등장하는 한 에피소드에서는 유코라는 겁 많은 아이가 마음을 열게 된 일화가 소개된다. 마음이 약한 유코는 학교에서 남자아이들이 피를 튀기며 싸우는 걸 보고 집에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는데,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만류에도 한사코 방에서 나오는 걸 거절한다. 그러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아버지를 밀쳐 다치게 하고, 다쳐서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보다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유코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사실 우울한 사람에게 고기를 사주는 일은, 다쳐서 피를 흘리면서도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단 몇 푼 일지라도 상대를 위해 아까운 내 돈을 쓰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다 안다. 마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지안이 아저씨 동훈에게 밥을 얻어먹으면서 “나아질 기미도 없는 인생 몇 번 돕다 보면 다 떠나요. 지들이 착한 줄 아나 보지.”라고 하는 말에 동훈이 “착한 거야. 몇 번이 어디야. 한 번도 안 도와주는 사람이 더 많은데.”라고 타이르는 것처럼. 드라마 속 지안도 나중에는 동훈의 약점을 잡았던 자기 의도와 다르게 그가 자신을 위해 애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확실히 그런 일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나에게 고기를 사준 그 사람은 돈과 시간을 다른 유용한 곳에 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위로하고 내 몸을 보신하는데 자기의 소중한 재산과 시간을 쓴 셈이다. 하물며 고기를 사주는 일도 큰 위로가 되는데, 그보다 더 한 일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구해줘서 고마워요."
"낭비하지 말아요 당신 삶을......."
영화 <아이언 맨>에서 토니 스타크는 천재적인 두뇌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로 살았지만 테러 단체에 납치돼 잉센을 만나기 전까지 실은 단 한 번도 누군가 대가 없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막대한 재산과 명성은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자기를 위해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가족이나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잘났기 때문에 늘 세상과 싸워야 하고 약해 보이지 않으려 만사가 우습다는 태도로 톡쏘듯 퉁명스럽게 살았지만 잉센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뒤 그의 행보는 180도 바뀌게 된다.
희생은 그 어떤 위로와 희망보다도 강력한 각성제다. '나'라는 존재를 귀히 여기고 이 존재가 사라질까봐 염려하고 슬퍼하는 것.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믿고 버틸 수 있도록 밀어주는 일. 이 위대한 힘을 한 번 겪은 사람은 그 자신의 가치를 그 어떤 방법보다도 빠르게 깨닫는다.
그렇다면 비관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그건 바로 진짜 그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 사람의 잠재력을 높이 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희생도 감수하는 것이다. 방향은 다를지언정 고기를 사주는 일도 원리는 같다. 오히려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런 소소한 격려가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나 역시도 아끼는 사람이 우울에 빠져있으면 일단 뭐라도 먹이려고 하거나 그 사람의 가치를 사려고 노력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고기를 사줘라!"라는 말은 농담처럼 스쳐지나가곤 하지만 이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정말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두 손 끌고 가서 뭐라도 먹이자. 그리고 그 사람이 죽도록 힘들어하는데도 결코 놓지 않는 무엇인가를 함께 아껴주자. 그게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고, 재능을 사는 일이든, 그 사람의 물건 하나라도 팔아주는 일이든 간에. 분명 그건 누군가에겐 거대한 활화산을 태울 불씨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