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신작 <어쩔수가없다>(2025) 발표 후 최근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해 묻는 질문에 "영화가 재미없는데 억지로 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작심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영화가 그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나름의 자신감도 내비쳤는데, 그게 나는 좀 걱정이었다. 그 뭐랄까, 영화를 보면 꼭 "다 괜찮아. 살아서 돌아올게"라고 하는 놈이 먼저 죽는다는 사망 플래그도 있지 않나.
그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대작을 남긴 감독들이 실험 정신에 집착하다가 종종 졸작을 남기는 경우도 분명히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필적할 또 하나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호불호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영화를 하나의 거대한 은유로 생각하고 보면 호의 영역이 조금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보자. 스크린 중심에 가상의 선을 긋게 되면 그것을 기점으로 화면이 양분돼 있다. 각각의 화면엔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 혹은 이미지가 묘사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이미지는 무작위적이고, 혼돈 그 자체다
가상의 구분선
<어쩔수가없다>에는 중요한 특징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화면을 이등분해서 마치 두 개의 화면을 동시에 보는 것 같은 구도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볼 때 스크린 한가운데에 임의의 선을 그어보면 매 장면마다 그 선과 일치하는 가상의 구분선이 있음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왜 박찬욱 감독은 영화 가운데에 임의의 선을 긋고 이미지를 양분하고 있을까?
영화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대칭을 구현한다. 그런데 그 영화 속을 채우고 있는 인물과 사물들은 온갖 형태와 색채로 뒤죽박죽 되어있다. 세상은 본디 이분법적으로 돌아간다. 선과 악이 있으며, 찬성이 있으면 반대도 있다. 돈을 벌 때는 기업가와 노동자로 양분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회색지대로 여기는 까닭은 그 단순한 구별이라고 하더라도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반합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 정반합의 궤가 무수히 많다면 보기에는 매우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2는 2일뿐이지만, 2의 20승은 백만이 넘는다. 박찬욱 감독이 대칭을 고집하면서도 사물과 인물을 어지러이 놓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양분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담겨있다. 한쪽에 지옥의 묵시록이 펼쳐져도 다른 한쪽에는 천국 같은 그림이 펼쳐질 수도 있다. 특히 만수가 아라(불륜 아내)에게 쫓길 때, 시조(구두 가게 매니저)를 총으로 쏴 죽일 때, 화면 왼쪽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비치는데 오른쪽에서는 살인 혹은 살인을 위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평안하고 아름다운 삶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영화의 이미지에서 이미 드러나 있는 셈이다.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 겉보기에는 멀쩡한 사람들이 모두 바르고 올바른 길만을 선택해 거기에 닿았을까. 이 음흉한 질문은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묘하게 사실적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악행의 소재로 등장하는 밥그릇 싸움, 불륜, 살인, 직장 내 괴롭힘 따위는 그곳에 실질적으로 닿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뒤섞인 채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세상은 각자의 사정대로 돌아갈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양분된 이미지에 놓인 인물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서 마주한다. 만수와 범모가 대치하는 상황이 좋은 예다. 만수는 경쟁자를 제거하고 지난 과거를 되찾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있지만 범모에게는 아내의 불륜이 주된 관심사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서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되고, 대화가 어긋나는데도 상황 자체는 그럴싸하게 돌아가며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는 블랙코미디가 펼쳐진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 사는 세상 같지 않은가. 이런 동상이몽의 현장을 스크린을 쪼개 나타낸 것은 꽤 재치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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