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인간과 그 복제된 인간을 복제해 만든 페르소나. <서브스턴스>는 이런 이미지를 다루는 데 탁월함을 보인다
영화 <서브스턴스>(2024)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충격적인 엔딩 시퀀스로 대미를 장식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1987)을 떠올리게 하는 SF적 상상력에, 대런 아로노포스키 감독의 <블랙스완>(2011) 같은 영화도 문득 떠오르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주연인 마가렛 퀄리가 단역으로 출연했던 <원스 오픈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인 오프닝 숏은 계란에 '서브스턴스' 물질을 주입하자 노른자가 두 개가 되는 '과학적 농담'으로 시작된다. 깨버린 달걀에 특수 물질을 주입한다고 해서 같은 노른자가 똑같이 생긴다는 게 생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을 관객에게 주입할 목적으로 일련의 마스터 숏이 된다. 영화의 설정을 담고 있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 자체로 영화의 기승전결을 모두 담고 있는 인상적인 오프닝 숏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숏을 가장 처음에 배치했을까? 영화는 때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두 숏을 몽타주로 이어 붙여서 그 환유적 연결성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의미를 발굴해 낸다. 쿨레쇼프 효과처럼 말이다. 그다음 이어지는 신들은 엘리자베스가 신인 배우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는 장면들로 이어지고, 수직 부감으로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 덧붙여 점점 초라해지는 명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중 데미 무어가 열연한 엘리자베스는 할리우드 스타다.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은 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데, 이는 스타가 탄생하는 원리와도 같다. 배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이었던 이들은 영화 산업에서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대중들에게 영화 캐릭터로서 얼굴을 각인시키고 또 하나의 인격을 가진다. 가령 오드리 헵번을 떠올려보자. 그녀가 죽은 지 이미 30년이 지났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티파니 앤 코 매장을 지나던 홀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살아있다.
배우로서 내리막을 걷게 된 엘리자베스는 어떤 연유로 스타가 되었는지 묘사가 되진 않지만 육체미를 통해서 대중의 지지를 얻어왔던 것은 분명하다. 불쾌할 정도의 클로즈업으로 성을 상품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다가오지만 주인공은 애초에 그런 고리타분한 '남성이 시선'이 어쨌니, 저쨌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줬던 방식에서 아름다움을 갈구하며 대중의 관심을 다시 사로잡을 수단으로써 젊은 육체를 탐한다.
그렇게 보면 서브스턴스를 통해 엘리자베스가 낳는 '수'는 스타로서의 재탄생을 의미하기도 하고 '젊어지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계란 오프닝과 할리우드 명판과의 관계는 그렇게 이어지며 영화의 마지막까지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 이 영화는 인상적인 연출을 많이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인물을 꽤 근접한 클로즈업으로 언제나 화면 중심에 둔다는 점이며, 주인공은 당연하고 집착에 가까운 정도로 거의 모든 인물을 화면 중심에 둔다. 이 구도는 '나'가 가장 우선시되는 현대사회의 이기적인 면모를 잘 표현한 연출인데, 그 정도가 심할수록 화면을 채우는 빈도가 잦아지고 클로즈업이 극대화된다. 이와는 정반대로 극 중반부에 '나'를 지우고 연출된 광고판 사진이나 자화상만 덩그러니 남기는 장면도 있는데, 들끓는 이기심과 달리 정작 본질을 외면해버린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미장센을 밝은 핑크톤과 어둡고 진한 색감의 대비를 통해 인물들의 대립을 표현한 것은 물론 육체의 생성, 정지, 변조, 파괴에 이르기까지 충격적이고 생경한 이미지를 거침없는 인물의 욕망에 투사해 함께 표현한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육체 단계에 머물고 있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욕망을 '전성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이성적 욕망과 한데 묶는 탁월함은 '육체라는 실물' 그리고 모방된 이미지로서 '광고판'에 투사하는 연출로 이어진다. 사실 이렇게 인간의 내면을 시각화하는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작품은 정말이지 드물다. 100점을 준다 해도 과하지가 않다.
한 사람으로 두 사람 분량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플롯은 하나인 이 독특한 서사 구조엔, 영화적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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