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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내는 사람이 알고 있는 비밀 하나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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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보는 일은 잘 없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예외였다. 모던한 F1 타이포그래피에 몸매가 드러난 새하얀 레이싱 슈트를 빼입은 브래드 피트가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미중년을 넘어 미노년에 접어든 브래드 피트가 F1 레이싱을 한다니 어쩐지 반항기 있는 그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F1' 아닌가. F1 레이싱은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경쟁 중 가장 빠르고 위험한 대결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영화적인 소재다.


조셉 코센스키 감독의 전작 <탑건 : 매버릭>(2022)을 재밌게 봐서인지 이번 <F1 더 무비>(2025)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영화를 보면서 어쩐지 서사가 매버릭과 겹쳐 보인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전체적인 서사는 <탑겁 : 매버릭>을 닮았고, 할리우드 대중 영화 특유의 리셰가 적당한 비율로 섞여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치고 서사에 불만을 가질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심장을 뛰게 만드는 승부 근성과 웅장한 사운드, 그리고 빨려들듯한 압도적인 F1 머신의 노면을 긁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에 열광하지 않았나.


3시간 가까운 긴 러닝타임을 짧게 느껴지게 한 비결엔 브래드 피트, 하이에르 바르뎀 같은 걸출한 스타의 등장도 있지만 아카데미 편집상 수상자인 스티븐 미리오네의 영리한 편집도 한몫 거든다. 인물들이 상호 교류하는 드라마는 요즘 쇼츠를 보는 듯 빠른 리듬의 편집을 가하고, 주인공의 경기엔 롱테이크를 배치함으로써 '느슨함은 짧게', '긴박함은 길게'하는 편집 착시를 일으킨다. 거기에 말이 필요 없는 한스 짐머의 웅장한 에픽 시네마틱 사운드는 F1 머신의 엔진 사운드가 현악과 타악처럼 얹어진다. 현대 음악과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성에 관객의 함성 소리조차 악보의 일부로 스며들게 한 그 재치는 듣는 귀마저 즐겁게 한다.


그런데 실제 F1 경기 대회 도중에 촬영했다는 이 영화의 실감 나는 연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성을 부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진다. 감독은 왜 이렇게까지 이 대결을 영화로 담으려고 했을까. 단지 '소재가 영화적이다'라는 이유를 들먹이기엔 이 영화에 너무도 진심이질 않나. CG라는 쉬운 길을 내버려둔 채 진짜 영화 촬영용 포뮬러 머신을 제작하고 촬영감독 클라우디오 미란다는 소니와 협업해 아예 초소형 IMAX 카메라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담아야 할 궁극적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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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탑건 : 매버릭>(위)에 등장하는 F-18 전투기와 <오블리비언>에 등장하는 전투용 드론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트론>(2010), <오블리비언>(2013), <탑건 : 매버릭>(2022), <F1 더 무비>(2025)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다루는 기술'에 집중해 왔다. 그는 첨단 문명 속에서 인간이 고군분투하는 드라마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첨단의 극치이면서 어찌 보면 인간의 삶과 가장 동떨어진 기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드론, 전투기와 같은 것들은 군사적 대치가 있을 때나 유용할 뿐이며, F1 포뮬러 머신은 정말 순수하게 그 대회에서 사용하기 위한 목적만 가지고 있다. 조셉 코신스키의 영화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을 도구를 반대로 생생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그 도구들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내곤 한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기계들이 가지는 특징은 뭘까? 바로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이면서 고도의 신뢰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은 상대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온갖 도구로 관철시킨 데 있다. 석기, 철기, 증기, 제트엔진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도구를 갖기 위한 욕망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와도 직결된다.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혹은 그 데이터를 수집해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엔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다. 지는 것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지면 당연히 목숨을 잃고, 현대 사회에서 기술 대결에서 지면 재정적 파탄을 맞이한다. 생존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해 욕망은 신뢰에 대한 압력을 낳고, 신뢰는 욕망을 충족한다.


그런 점에서 문명사회의 기술적 한계에 도전하는 일은 어찌 보면 큰 스포츠 대회만큼이나 살 떨리는 일이 된다. 극 중에서 경주에 임하는 주인공 못지않게 피트의 정비 팀과 그들의 기술적 토론을 꽤 비중 있게 다루는 것도, 루벤이 재정 문제나 이사회를 수시로 언급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수백만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욕망의 정점에서 벌어지는 대결은 작은 행동, 작은 기술적 결함 하나하나에도 거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0.1초의 기록이 죽음과 생존에 준하는 엄청난 차이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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