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판에 말 놓기
한 가지 예를 살펴보자. 너무 잘 알려진 대중적인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서사에서 큰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늘 안고 산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신선함이나 재미를 느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미장센 만으로 그 한계를 넘는 영화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안중근의 삶을 다룬 영화 <하얼빈>(2024)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힘겹게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광대한 영역의 설국을 펼쳐놓으면서 안중근을 거의 한 점처럼 묘사한다. 숏이 전환되고 안중근이 스크린의 중심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도 워낙 주변 배경의 빈 공간이 크다 보니 그 역시 작게 느껴진다. 우민호 감독은 대체 왜 안중근을 이 하얀 설국 속에 파묻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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