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방문해서 글을 쓰면 채 한 시간도 되기도 전에 좋아요가 우수수 달린다. 누군가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기분은 좋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의문도 있다. 이 사람들은 유료 구독도 안 했는데 글을 읽기나 하는 걸까?
크롬의 시크릿 모드로 접속해서 내 채널로 들어와 본다. 글을 읽어보려고 하면 가장 윗단의 한토막 정도 나오는데, 그걸로 글을 읽었다고 보는 건 과연 무리가 있다. 실로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결제까지 하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좋아요'의 진정성에 관해서는 조금은 불쾌한 감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당신은 길거리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상이 참 좋으세요'하며 다가오는 사이비들에게 호감을 품은 적이 있는가. 인상이 좋다는 소리도 기왕이면 모임 같은 데에서 면식이나마 했을 때 듣고 싶은 것이지, 좋은 말이라도 아무 때나 막 던진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유료 허들이 있는데 어떡해요 그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유료로 글을 쓰지 않을 때도 똑같았다. 그날 올라온 피드의 출발선에 서서 '준비, 땅!' 하면 포켓몬 빵의 스티커를 빼내듯 봉지만 뜯고 빵은 버린다.
예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브런치 내부에서 잡음이 많았다.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내비치는 작가도 있었고, 항변하는 작가도 있었으며, 혹자는 그것을 가지고 싸우기도 했다. 나는 철저한 아웃사이더, 언더독 포지션을 고수하고 있으므로 그런 논쟁에 낄 겨를도 없었지만 현상 자체는 관심 있게 지켜본 바 있다. 실제로 '좋아요' 매크로를 사용하는 작가도 있으며, 심한 경우엔 마케팅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좋아요 알바'를 시키기도 한다(구글에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어디서 '브런치 구독자 수 늘리는 방법' 같은 것을 보고 와서 수동으로 최신 글을 리프레시하며 모든 글에 좋아요를 찍는다고 한다. 정말 왜 그럴까 싶긴 한데, 문제는 이게 효과는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열심히 좋아요 찍고 다니던 사람들을 한두 달쯤 뒤에 보면 구독자가 벌써 오백 명, 천 명씩 막 늘어나있기는 하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라면 호의를 비치는 사람에게 호의를 품게 마련이고,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다. 나처럼 만사를 회의적으로 보는 인간이 아니라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호의를 매정하게 뿌리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마음 여린 작가들이라면.
하나 나의 지론은 그렇게 독자를 모아봐야 글쓰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아요와 구독자에 심취해 있으면 귀마개를 하고 안대를 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이게 글에 대한 평가인지, 친구 하자는 이야기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그런 일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지금도 좋아요를 누른다고 해서 답방을 간다거나 하지 않는다. 나도 한 때는 다른 작가들과 구독도 하고 좋아요도 누르며 열심히 소통하던 때가 있었으나 어느 순간 그런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천성이 큐레이터 체질인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그런 일은 이제 하지 않고 나는 상대방의 글을 읽고 정말 좋으면 좋아요를 누르고 아니면 안 누른다. 그게 상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생각도 조금은 바뀌고 있다. 뭐가 어찌 됐든 간에 그렇게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그게 무용지물이든, 돈을 써서 알바를 시켰든, 정말 그러지 않고선 못 배길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 17년 지기 친구와 만나 광안리 바다를 보며 논알콜맥주를 손에 쥐고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무명 배우인 그가 프로필을 수십 장을 돌렸는데 아무런 답이 없더라는 이야기와, 조우진 배우가 무명 시절에 겪었던 일화를 내가 참 감명 깊게 봤다는 이야기를.
조우진 배우의 출세작은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이다. 요즘 그는 추석 특집 영화의 주연자리를 꿰찰 만큼 큰 배우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전까지 그 역시 십수 년의 무명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프로필을 돌려도 무시당하기 일쑤고, 옷매무새 가다듬고 제작사를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문전박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붙인 비타민 음료를 프로필에 담아 같이 건네 보자는 것.
백날천날 오는 프로필인데도 얼굴 사진이 붙어있는 음료와 함께 받으니 관계자가 '그게 뭡니까?' 하며 흘깃 얼굴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그 한 번 얼굴 기억한 게 오디션으로 이어지고, 면접으로 이어지며 기회의 시작이 됐다고 한다. 조우진 배우가 관계자에게 무슨 애정이 있어서 비타민 음료를 정성껏 꾸며서 건넸겠는가. 그저 한 번이라도 더 보게 하려고 용을 쓴 것이지. 친구는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일단 촬영 일정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겠고, 너도 너만의 얼굴이 있고 강점이 있으니 그걸 잘 어필해 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조우진 배우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저렇게까지 하는' 태도가 감명 깊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모르되, 브런치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다른 사람 글을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좋아요 한 번 누른 사람의 프로필과 글 목록 정도는 확인해 보게 되지 않는가? 그러다 글의 제목이 구미가 당기면 읽어보고, 정말 좋으면 좋아요도 누르질 않던가? 내가 그 작가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도 아니고, 심사위원도 아니며, 걸출한 작가도 아니건만 일개 필부에게까지 자기 PR을 하는 간절함을 열정으로 생각해 본다면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손수 수작업으로 비타민 음료에 프로필 사진을 붙인 것과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성의 없이 좋아요를 뚝딱거리는 건 하늘과 땅차이인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일단 그렇게까지 해서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의 글목록에 '들어는 가 볼' 요량이다. 그리고 가끔씩 응원이나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의 글은 좀 더 꼼꼼히 읽어볼 생각이다. 그 사람이 자동화 되어 있는지, 수동으로 돌아다니고 있는지 판별하는 방법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하면 그만이다. 다만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상대의 글을 읽고 진짜 좋으면 좋아요를 누를 것이다.
'전자동 좋아요 시스템'에 내가 그렇다고 완전히 호감을 품겠다는 것은 아니다. -50에서 시작하던 걸 -30쯤으로 시작해 보겠다는 것뿐이다. 나는 가끔 '이 글은 엉망이라 사람들이 덜 봤으면 좋겠다' 하며 덜덜 떨 때도 있는데 정말 그렇게까지 글을 보여주고 싶다니, 한편으론 기대도 된다. 뭔가 걸작을 만들고 꽃향기를 뿜으며 벌을 꼬드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모든 글을 읽어볼 수는 없지만, 뭐든 '좋아요'가 찍힌다면 일단 가보기는 하겠다. 비록 흔적은 남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