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대부>를 꼭 챙겨본다는 친구에게 문득 질문 하나를 받았다. 주인공 마이클이 결말부에 상대 조직원들을 다 소탕하고 후속작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버린 것이 모두 아버지 비토의 계획이었냐는 질문.
먼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대부>에 나오는 인물들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면, 대부 돈 비토 콜레오네는 마약 사업을 벌이자는 타탈리아 패밀리 솔로조의 제안을 거절한 뒤로 테러를 당한 상태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의 경호 문제로 부패 경찰에게 대들다 한대 얻어맞기까지 한 아들 마이클은, 자신을 샌님 취급하는 조직 간부들과 형을 설득해 그 스스로 솔로조와 경찰 간부를 총으로 쏴 죽이는 선택을 한다.
원래 마이클은 조직 생활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았다. 그 스스로 아이비리그에 진학했으며,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영웅이 되기도 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자식이란 게 내 맘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비토의 영향력과 마이클의 지성이라면 충분히 권력가가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토는 마이클이 조직과 멀어지더라도 차라리 다행으로 여겼지만, 와병 중에 마이클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막을 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고통스러운 얼굴로 가신들을 물리친다.
사실 이쯤에서 답은 나와있는 듯하다. 만약 모종의 계획이 있었다고 해도, 마이클이 상대조직을 일망타진하고 냉혈한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그가 유망한 권력가가 되어서 조직원들을 부리는 편이 더 비토의 계획에 부합했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비토와 마이클이 독대한 장면에서 자신은 평생을 권력가들의 총잡이나 될 운명에서 주도면밀하게 살 수밖에 없었지만 마이클은 바로 그런 권력가가 되길 바랐다고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첫째 아들 소니는 영락없이 조직 생활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성격이 불 같고 치밀하지 못했으며, 둘째는 무슨 일을 맡기기에는 너무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은 벌어졌다. 마이클의 순간적인 복수심이었든, 아니면 코를리오네 가문의 유전자가 절로 발현한 것이든 간에, 어찌 됐건 그가 솔로조와 경찰 간부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토는 그런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아들에게 이 냉혹한 판에서 살아남는 법을 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아들아 보아라, 이들 중 욕심을 드러내는 자가 곧 배후일지니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마이클이 대부의 가업을 승계하는 과정이 필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도박이나 매춘 정도로 통제 가능한 일만 다루고 있었던 갱스터들에게 마약 사업이라는 새로운 황금마차가 들어오자 대부는 자신이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쥐고 통제하던 이 바닥에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올 것임을 직감한다. 솔로조에게 암살 시도를 당한 순간부터 불어닥친 피의 복수극에서 누구라도 예외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막대한 이윤 앞 탐욕에 젖어버린 인간들이 있으며 그것이 거대한 배후가 되어 마이클을 끝내 낭떠러지로 밀어버릴 것도 대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망설임이 있었음에도 비토가 마이크를 본격적인 후계자로 지목하기로 결심한 것은 역시 5대 연합이 회동한 자리에서 주선자 바르치니의 속셈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타탈리아 패밀리와의 화해를 주선하는 자리에서 마약 사업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의중을 보면서 실은 진짜 목적이 '세력 간의 평화'에 있지 않고 황금마차를 굴리려는 데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조직들도 '신산업'에 찬동하는 분위기이고, 이런 판국이라면 코를리오네 가문은 언제까지나 누군가와 싸워야 한다. 당장 바르치니가 아니어도 탐욕에 눈이 먼 새로운 인간들과 함께 말이다.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그다음은 빠르게 세대 전환을 할 차례다. 가신들이 대부에게 찾아와 몇 가지 부탁을 하지만 그는 마이클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다. 이 장면에서 마이클이 톡 쏘듯이 헤이건을 콘실리에리(자문역)에서 전속 변호사로 강등하는 것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부가 마이클을 거들어 헤이건을 타이르는 것도, 이미 마약 사업이라는 욕망의 용광로가 끓기 시작한 시점부터 타 세력과 결탁하려는 내부의 배신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만전술을 사용한 것일 수 있다. 즉, 대부는 이 시점부터 마이클에게 권력 승계 작업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처세술까지 물려주고 있었던 셈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업을 이룬 군주들은 신의를 잘 지키는 인물이라기보다 교활함으로 상대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거기에는 두 가지 싸움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법으로 하는 싸움이고, 다른 하나는 힘으로 하는 싸움이다. 첫 번째의 것은 인간에게 적합하며, 두 번째의 것은 짐승에게 적합하다. 마키아벨리는 첫 번째 싸움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두 번째 싸움에도 공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짐승과 인간을 잘 다룰 줄 아는 것이 군주의 좋은 자질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짐승을 인간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교활한 군주의 뛰어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비토는 마이클에게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가신들 앞에서는 허술해 보이거나 얕잡혀 보일 만한 행동을 하게 한다. 상대에게는 허술하게 보이면서도 그 자신은 절대 방심하지 않는 상태는『손자병법』에서도 강조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헤이건의 강등은 그 좋은 예다. 결국 예상대로 마이클에게 바르치니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배신자가 나타나게 되고, 마이클은 그 세례식 날 피의 숙청을 감행한다. 변방으로 밀어낸 줄 알았던 헤이건이 갑자기 집행자가 되어 나타나자 배신자는 비로소 모든 게 마이클의 계략, 대부의 선견지명이 방아쇠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도 가업을 잇게 될 마이클 앞에서 근심이 가득한 비토
이 시점에서 결과적으로 마이클은 대부의 뒤를 잇는 코를리오네 가문의 수장으로 본격적으로 발돋움하게 되지만, 나는 거기까지 비토가 계획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새로운 탐욕이 세력 투쟁을 가속화시키고 언젠가는 마이클이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현실화되자 그 속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을 유산으로 물려준 것에 가깝지 않나. 다만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막내아들에게 미치게 된 데 대해서, 대부는 자신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일이 그렇게 된 건 모두 자신의 업보라는 것을 알고서 회한에 젖은 표정을 지었던 게다.
마이클은 아버지의 가업을 잇지 않으려고도 했고, 비토 역시 그러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비토가 몸담아온 세계와 그 방식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불어오는 피바람 앞에서 비토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이제껏 해왔던, '주도면밀'을 마이클에게 넘겨주는 것. 그런 건 계획이라기보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아들에게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는 사랑의 행위, 먼바다에 낚싯배를 끌고 온 그 자신에 대한 한탄 정도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다고 마이클이 솔로조를 총으로 쐈던 일이나, 풍랑에 빠진 아들이 파도와 맞서 싸워야하는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렇기에 대부는 더 노파심에 젖어있었던 게 아닐까.
조직에 몸담았으니 폭력의 방법을 계승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후 마이클의 행적은 대부의 유산을 발판으로 마이클이 그 자신의 방식으로 키워나간 결과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덕장이 되었을 수도 있고, 지장이 되었을 수 있고, 용장이 되었을 수 있다. 큰 칼을 쥐어주면 망나니가 되는 인간도 있지만 지휘검으로 삼아 군령을 집행하는 장군이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큰아들 소니는 주먹부터 내지르다 변을 당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나는 비토가 정말로 계획을 세웠다면 그 계획은 바다에 빠져버린 아들에게 준 구명조끼를 어떻게 수선할 것인가의 고민, 혹은 육지를 찾는 법 정도에 불과할 거라 생각한다. 바다를 헤쳐나간 후 마이클의 삶은, 마이클이 만들어나간 것이고.
2024.10.31
*본문 사진
-영화 <대부>(1972) 포스터
-영화 <대부>(1972)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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