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운전하는 방법 <드라이브 마이 카>

by 민경민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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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는 지나간 것인가, 가고 있는 것인가


<드라이브 마이 카>는 길 위를 달리는 빨간 컬러의 '사브 900'의 이미지를 자주 보여준다. 단순히 차량 이미지만 자주 비추는 것이 아니다. 이 이미지에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다. 영화 초기에는 차량 보닛 앞쪽의 도로를 비추면서 '차량이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라고 암시하지만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차량 트렁크 부분의 도로 후방을 자주 비추게 된다.


운전석에서 바라보게 되는 도로의 정면은 앞으로 가게 될, 미답의 영역이다. 다시 말해 미래가 도래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다리와도 같으며, 언제나 미래의 사건을 암시한다. 반대로 자동차 후방의 이미 지나온 길은 과거의 적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 차는 과거를 딛고 밀려나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를 움켜쥐며 나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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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극배우인 주인공 가후쿠 옆에서 이야기를 읊조리는 아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나체로 가후쿠를 내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이나 몸은 그림자로 뒤덮여있다. 섹스의 오르가즘을 창작의 근원으로 삼은 극작가 아내는 항상 관계가 끝난 후에 가후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여고생이 첫사랑의 빈집에 몰래 들어가 자위를 한다는 그런 이야기.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장면은 영화를 다 본 뒤에 다시 봐야 하는데, 그 이유는 후술 하겠다.


어쨌든 조금은 독특한 일상을 아내와 보내던 주인공은 직접 차를 몰고 업무차 나리타 공항에 방문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로 비행기에 타지 못하고, 그는 곧장 익숙한 방향인 집으로 핸들을 돌리지만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만다. 극단의 젊은 배우와 아내가 거실 소파에서 정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가후쿠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방향을 잃은 지점이 이곳이다. 나리타 공항 근처에 호텔을 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그는 일주일 뒤 돌아와 교통사고를 당한다. 차를 끔찍이 생각하고 때론 고지식할 정도로 시간과 안전을 챙기던 그가 부주의하게 교통사고를 내버린 것이다. 가야 할 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병원에 도달하게 된 가후쿠는 퇴원한 뒤 운전할 때마다 연습하는 희극 대사를 통해 자신의 현 상황을 빗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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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도를 발견한 가후쿠
"나의 인생은 글렀다. 돌이킬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밤낮으로 악령처럼 짓누르고 있다. 과거는 추억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현재는, 더욱 심하다."


끓어오르는 물처럼 인생은 종종 순간의 사건으로 과거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 되곤 한다. 가후쿠의 이상한 낌새를 우려하던 아내 오토는 별안간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에게 대화를 신청한다. 저녁에 돌아오면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에 가후쿠는 흔쾌히 수락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내는 쓰러져있다. 뇌지주막하 출혈로 급사하게 된 아내의 장례를 치른 그는, 이제 방향을 잃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야 할지 목적지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바람피운 아내를 책망할 수도 없게 됐고, 그렇다고 아내와 외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따지고 들었던 것도 아니다. 그녀가 자살이라도 했다면 의도가 분명하겠지만 단순 급사다. 참회인지 책망인지 그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채 오토는 숨졌다. 망가졌다고 생각했던 인생이 이제는 아예 붕괴되어 사라져 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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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에서의 사건과 아내의 죽음 이후 등장한 점프 컷


잃어버린 방향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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