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뒤에 비로소 커지는 것도 있다 <만약에 우리>

by 민경민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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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첫날 본 영화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1995)였다. 외로움 같은 걸 타는 성격은 아닌데 이상하게 요 근래 로맨스 영화를 자주 보게 됐다. <러브레터>와 결이 비슷한 <윤희에게>(2019)에서부터 '금지된 사랑'의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화양연화>(2000)까지.


로맨스 영화도 시대에 따라 공식이 변천한다. 말괄량이가 신사를 만나 사랑을 이루는 로맨스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갈망하다가 끝내 파국을 맞는 비극적 로맨스 같이 직선적인 서사가 고전이었다면 현대 로맨스는 애초에 불가능한 사랑을 주로 많이 다룬다.


첫 단락에서 언급한 세 영화도 '죽은 연인에 대한 사랑', '오래전 헤어진 동성연인', '서로 불륜에 빠진 배우자를 둔 배우자들의 은밀한 사랑' 같은 성립이 되지 않거나 되기가 매우 힘든 사랑들이다. 이도 아니라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나 <나는 어제 내일의 너와 만난다>(2016)와 같이 아예 판타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배경이 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트북>(2004) 같은 클래식한 영화도 인기를 끌지만 어쨌든 대중들의 수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면 요즘 로맨스 영화는 어떨까. 최근 개봉하는 작품들은 '사랑이 이루어질까?'라는 질문보다는 '사랑 다음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더 많이 던지는 편이다. 그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로맨스 장르를 취하고 있어도 내부로 들어가면 인생의 교훈과도 맞닿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경향의 대중적인 서막을 올린 <라라랜드>(2016) 역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 화두가 아니다. '사랑이 끝나면?'이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아노라>(2024)와 <패스트 라이브즈>(2023)와 같은 영화 역시 사랑의 성립 자체보다 사랑이 끝난 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다루고 있다. <건축학개론>(2012), <너의 결혼식>(2018) 같은 한국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만약에 우리>는 '사랑 다음엔 무엇이 있나?'라는 질문의 최전선에 있는 영화다. 유행을 변조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치지 않고 제목 자체를 질문으로 이끌고 오는 이 영화는, 결항된 비행기처럼 오래 묵혀뒀던 질문을 영화 시작부터 불쑥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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