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새가 '나쁜 새'인가

by 민경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3.11.0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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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꾀어내는 왜가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에 등장하는 새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탈출을 꿈꿨으나 세상의 룰을 극복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약자를 사냥하며 지독한 악당이 된 팰리컨, 자기 생각 따위는 완전히 거세해 버리고 타자의 의견에만 동조해 세뇌된 말을 반복해서 떠벌이는 앵무새들, 그리고 자기 이익에만 헌신하지만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타인과 협동하기도 하는 협상가 왜가리.


만약 이 중에서 가장 나쁜 새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새를 고를 수 있을까. 왜가리일까? 팰리컨? 아니면 앵무새?


먼저 초반에 주인공 마히토를 꾀어내 저승으로 불러들인 왜가리는 도도한 생김새 아래에 추한 내면을 숨기고서 남을 속이는데 정통하지만 그 자신이 위험에 빠지면 선의를(비록 이익에 따른 배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지라도)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과 때때로 다투고 주인공을 돕는 것도 결국에는 '빛의 다리'를 넘어가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호의지만 어쨌든 왜가리는 내가 어리숙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 이상 유용하기까지 하다.


극중에서 왜가리는 마히토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하는 히미까지 함께 구출할 때가 있다. 즉, 상호 이익에 부합하면 왜가리는 친구가 될 수도(마지막에 그는 주인공을 '친구'로 부르며 끝까지 '팁'을 남겨준다) 있기에 주인공을 비롯한 관객들에게도 나쁜 새라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왜가리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쳐야 하는 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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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의 팰리컨들


언듯 보기에 가장 나쁜 새는 팰리컨 같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승천하는 와라와라(작중 등장하는 작은 영혼)를 무자비하게 사냥하고 삼켜버리는 이들은 약자를 먹잇감으로 두기에 윤리적으로 가장 비난받을만하다.


하지만 키리코의 집에 히미의 불꽃에 불타버린 팰리컨 한 마리가 떨어지자 주인공 마히토는 숨통을 끊어달라는 늙은 왜가리에게서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전후사정을 알게 된다. 본래 그들은 먹을 것이 없는 저승에서 안락한 세계로 도약을 꿈꾼 자들로, 이 세계의 규칙을 극복하지 못하고 번번이 탈출에 실패해 살아남고자 무엇이든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들은 처음부터 악의를 고수한 새들이 아니기 때문에 악의를 숨기며 변명하려들지 않고 그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것쯤은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악의를 자청한 자들이 그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고 노력하는데 반해 팰리컨은 자신의 과오를 순순히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마저 악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건 와라와라를 지키기 위해 등장한 히미가 팰리컨을 불태울 때 와라와라까지 함께 불타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때때로 '정의의 이름'조차 악의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선의까지 피해를 끼친다는 걸 팰리컨의 에피소드에 끼워 넣음으로써 팰리컨의 양면적인 속성을 한껏 더 부각한다. 결론적으로 팰리컨의 악행은 악의이기는 하지만 사자의 가젤 사냥을 마냥 욕할 수 없는 것처럼, 팰리컨의 악의도 가장 나쁜 것으로 호도될 만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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