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by 민경민

*2024.2.1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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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킹덤>을 보면 사건이 일단락되고 세자 이창과 착호군 영신이 함께 바닷가를 걷는 장면이 나온다. 세자는 복수도 했고, 원하는 바는 이루지 않았느냐며 왜 아직까지도 자신과 같이 다니는지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영신은 말한다.


"쌀 한 톨, 고기 한 점 생겼습니까. 그들이 죽었어도 사는 건 똑같습니다. 여전히 배고프고, 여전히 개판입니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올해 유달리 그 장면이 자꾸만 생각이 났던 것은 나도 사실 딱히 변한 게 없어서이기도 하다. 마음은 편안했고 잠시 안정기에 접어들긴 했으나 내게 지금의 고요함은 치열했던 전투 직후 총알이 떨어져 숨을 돌리고 있는 정도의 여유에 불과하다. 여전히 배고프며, 해결해야 할 것은 산더미 같다. 지금의 나는 적막이 흐르는 참호에 웅크리고 앉아 어디선가 떨어진 신형 라이플과 약간의 전투식량을 넋 놓고 바라보는 눈이 풀린 병사와 같은 상태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므로(어쩌면 영원히-), 포성이 울리면 다시 총을 쥐고 참호 위로 기어올라가야 한다(2년 뒤 현재도 전쟁터에서 '돌격 앞으로' 하고 있다-필자주).


오래 품은 꿈을 이뤘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이십 대에는 등단 작가가 되는 것이 문학도의 필수 코스처럼 보였고 삼십 대에 접어들어서는 오기가 됐다. 그리고 현시점에서는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내가 상하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중략)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피천득, 「은전 한 닢」 중


시인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을 읽어보면 누가 봐도 은전 한 닢을 갖기에는 남루한 행태의 거지가 소중히 그 돈을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건 마치 셋방에 살며 하루 한 끼 라면을 먹는 사람이 팔뚝에 천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이 아니었을까. 작자의 설득에 결국 은전을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하던 거지는 그 이유를 단지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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