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펜싱 에페 경기에서 패배가 확실시된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를 중얼거리고 있다
운동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면서도 올림픽을 챙겨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2016년 리우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박상영 선수가 패배나 다름없는 스코어에서 역전에 성공한 그 기적적인 경기 덕분이다. 상대는 1점만 추가하면 승리하며 박상영 선수는 5점을 더 따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펜싱의 문외한이라도 이미 패색이 짙다는 걸 알 수 있다. 단박에 치고 나가 찌르기 하나로 승부를 봐야 하는 순간에, 실력차가 나는 상대로 5점을 내리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동전 던지기도 다섯 번 연속 앞면이 나오기가 힘들다.
강력한 상대, 순도 높은 패배의 순간, 불가능에 가까운 작은 희망.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2003) 마지막 장면에나 어울릴 법한 서사는 현실에서는 꿈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카메라는 박상영 선수의 클로즈업을 잡았다. 모두가 실패를 단언하는 그 순간에 나직하게 '할 수 있다'라는 조용한 다짐을 새긴 그의 모습엔 묘한 믿음이 갔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명장면 하나 덕분에 올림픽이라는 대회가 기다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펜싱이라는 경기가 이렇게 멋진 것이구나 싶었던 것도, 왜 사람들이 지원도 열악한 불모지에서 비인기종목을 인생을 걸고 연마하는지도 깨닫게 해 준 명경기였다.
그 이후 지난 10년 간 올림픽에서 박상영 선수가 안겨준 감동만큼의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원체 불가능에 가까운 서사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동계 올림픽 중계권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운데 반쯤 잊고 있었던 올림픽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새벽에 쇼트트랙 경기를 보려고 하던 차였다.
나는 운동 문외한이기 때문에 남들이 다 보려고 하는 것, 혹은 언론에서 '금메달을 기대합니다'하며 호들갑을 떠는 종목을 소개하면 그 종목을 골랐다가 곁가지로 옆에서 같이 중계해 주는 경기를 보곤 한다. 그러다 눈에 띄는 종목이 하나 들어왔는데, 여자 부문 하프파이프 대회 결선에 한국인 선수가 진출해 있다는 것이었다. 시청자도 중계진도 메달권을 염두에 두고 방송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관심도가 덜했지만 어쩐지 눈길이 갔다.
밀라노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여자 결승전 1차시에서 빙벽에 부딪힌 뒤 추락하는 최가온 선수
전날 이미 관련 경기를 보기는 했다. 남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대회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했다기에 살펴보니 세상에 이런 스포츠가 있나 싶다.
모든 운동 경기가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다지만 이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경기가 아닌가. 더구나 동계종목은 대체로 선수들의 나이가 어리다. 하프파이프 경기엔 미성년자도 많다. 가장 귀중하고 빛날 때 인생의 기회비용을 깡그리 투자한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스포츠라니, 처음엔 거부감이 들다가도 완벽한 기술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베테랑 선수조차 점프에 실패하는 것을 보면 이 경기가 얼마나 높은 난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체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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