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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작전>, 미디어가 레트로를 부르는 이유

by 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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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 <서울대작전> 스틸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tvN의 <응답하라 1997>(2012)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이어 방영된 <응답하라 1994>(2013), <응답하라 1988>(2015) 같은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에도 복고라는 개념이 낯선 개념은 아닌데도 그즈음 유난히 복고 열풍이 불었던 기억이 나는데, 걸그룹 티아라의 'Roly-Poly'라는 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고, 최고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MBC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인 자유로 가요제에서도 개그맨 박명수와 뮤지션 프라이머리가 함께 만든 팀 '거머리'가 레트로 장르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레트로 감성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레트로 열풍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식지 않았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견해는 레트로 열풍이 부는 까닭이 옛 문화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젊은 세대의 욕구에서 온다고 하는데,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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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는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미디어가 레트로를 부르는 방식


미디어가 표현하는 레트로의 특성은 '낡고, 젊고, 보편적인'이다. 단순히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당연히 좋다.


기본적으로 레트로는 수십 년 전의 문화를 모방하므로 당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한 어른 세대에게도 공감할 영역이 있고, 각종 콘텐츠에 등장하는 주체를 젊은 사람들로 채움으로써 '젊음'에 대한 영역을 공유하는 젊은 세대에도 이질감 없이 녹아들 수 있다. 그리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레트로는 소수의 마니아들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을 강화하면서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데,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라는 말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시대를 초월한 보편 가치를 내세우면서 세대 간의 경계를 더욱더 빠르게 허문다.


그래서 '복고풍의 배경에서 젊은이들이 펼치는 성장 드라마'가 미디어가 내세우는 전형적인 레트로 감성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작은 젊은 세대의 민감한 문화적 욕구에서 출발했을지 몰라도, 결국 레트로가 대중적인 니즈로 자리 잡고 각종 매체에서 정형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차라리 시장의 원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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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분포표는 곧 '소비분포표'이기도 하다. *자료 : 통계청



미디어가 레트로를 부르는 이유


전형적인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는 현재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베이비부머와 X세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들이 모두 잠재적인 시청자라고 할 때, 미디어는 어떤 콘텐츠를 가장 많이 내놓을까?


이제는 피곤함마저 불러일으키는 '트로트' 관련 포맷이 대한민국을 한차례 휩쓸고 다소 시들해졌음에도 여전히 임영웅이나 송가인 같은 트로트 가수들은 매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왜 트로트가 인기 있고, 임영웅이 방탄소년단과 맞먹으려 하는지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다. 잠재적 시청자인 인구를 보면 답이 나온다. 더구나 586-X세대는 인구만 많은 게 아니라 단군 이래로 가장 부유한 세대이며, 그 소비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만약 내가 지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론칭해야 한다면 PD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트로트가 이제는 태진아, 설운도, 송대관 같은 노장들에게 기대지 않고 포맷 자체가 젊어졌다는 거다. '낡고, 젊고, 보편적인'의 미디어 레트로 공식이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한 가지 무시할 수 없는 점은, 이들 586세대가 낳은 자식들 역시 인구가 꽤 된다는 점이다. 지금 20~30대인 MZ 세대는 그들 부모만큼은 아니지만 미디어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더구나 이들은 부유한 부모들의 퍼스널 쇼퍼 역할을 도맡으면서 잠재적으로는 부모 세대의 구매력까지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MZ 세대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부모들의 소비를 도우면서 아날로그-디지털 과도기를 몸소 겪은 세대로서 E-커머스 시대의 가교 역할까지 맡는다.


이쯤 하면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내놓을 콘텐츠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뻔하다. 가장 큰돈이 움직이는 영역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레트로는 그런 점에서 앞에서도 언급했듯, 마법의 묘약과 같다.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큰 격차의 세대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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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작전>은 내러티브보다 이미지에 더 많은 함의가 있는 영화다. *사진 : 영화 <서울대작전>



<서울대작전>의 레트로 감성


넷플릭스의 신작 영화 <서울대작전>(2022)은 전형적으로 미디어가 레트로를 부르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더구나 OTT를 필두로 광대한 플랫폼 기반을 가진 뉴미디어들은 이제껏 레거시 미디어가 해내지 못한 콘텐츠의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에 더해 문화적 보편성까지 따진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세계적 축제, 혹은 소니의 '워크맨'이나 애플의 '아이폰'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 제품은 국경을 망라하고 누구나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된다.


그런 점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배경으로 하는 <서울대작전>은 80년대를 살아온 한국의 50~60대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개최된 세계적 축제를 기억하는 전 세계의 베이비부머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거기에 정직한 사각형 형태의 헤드라이트를 가진 올드 카들의 모습은 동시대에 자동차를 소유했던 이들 누구나 추억할 수 있는 영역이 된다.


그래서 '1980년대'의 '젊은 청년들'이 '성공을 갈망'하며 '올드 카'로 '88 올림픽'을 무대로 활약한다는 내용은 정확히 '낡고 젊고 보편적인'이라는 레트로의 기본 공식을 따를뿐더러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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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작전>에는 자동차를 튜닝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사진 : 영화 <서울대작전>



레트로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하지만 사람들이 레트로에 열광하는 건 단순히 시장원리나 노스탤지어 때문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레트로가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이 필요한 세상'의 회귀에 있다.


요즘 세상은 너무 편해져서 방 안에서 모든 게 해결이 가능하다. 운전을 해도 자동차 혼자 주행이 가능하고, 스마트폰 터치 한 번에 방 안의 불도 껐다 켰다 할 수 있다. 편하기는 한데, 어쩐지 세상 속에서 인간이 점점 쓸모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기 전의 과거는, 어떤 복잡한 기계도 사람 손을 타야 했다. 자동차 창문을 내리는 것도 사람의 힘이 필요했고, 계기판도 단순한 아날로그 형식으로 사람이 직접 그 의미를 해석해야 했다. 모두 사람을 돕는 도구들이고, 결정적으로 그 중심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됐다.


<서울대작전>에서 자동차를 정비하고 개조하는 부분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이유도 삶의 주체인 인간을 편의라는 이름으로 점점 중심에서 밀어내는 요즘 시대에선 볼 수 없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도구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빼앗긴 존재감을 되찾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거기에 첨단 기술이 안 들어간 곳이 없어 개개인이 뭘 하려고 해도 쉽게 도전할 수가 없는 요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힙한 정신,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낡은 올드 카의 이미지는 쉬운 일 하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절한 카타르시스까지 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레트로의 부흥은 결국 사람이 중심에 있는 세상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염원이 담긴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조차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유행의 한 흐름으로 낡은 가치가 될지도 모르지만, 비록 이면에서 상업적인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그 의미가 변질되지 않는 한 레트로의 귀환은 언제나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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