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실험 중인 딸
실험용 로봇이 된 어머니를 총탄이 빗발치는 실험장에 내몰고 매번 폐기처분해야만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넷플릭스 신작 <정이>의 내용이다.
뇌 데이터를 완전히 복제한 다음 로봇에 옮겨 영생을 누리겠다는 크로노이드 회장의 사악한 계획에서 시작해 적국의 진보한 로봇 군단에 맞설 무기로 전쟁 영웅 '정이'의 생전 전투 기술을 '추출'해서 전쟁의 판도를 바꿔보겠다는 반공화국 진영의 욕구까지. 이 음울한 디스토피아 SF 영화는 사이버 펑크 이미지가 가득한 기존 SF물의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전혀 다른 영역의 세계를 다룬다.
사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한 AI와 로봇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서다. AI와 AI의 육체인 로봇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가운데에는 인간적인 숙명이 들어가 있다. 어머니를 실험하는 딸, 로봇을 실험하는 로봇, 나 자신이 아닌 자신, 인간이 아닌 인간 같은 명제는 철학적으로도 <정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정이> 속 오마주의 대상이 된 영화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나 <소스 코드>(2011)의 타임루프 신을 닮은 듯한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이, 로봇>(2004)과 유사하고 특히 크로노이드 회장의 분신인 연구소장 상우 부분에서는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서사가 보인다.
이 부분은 감독이 스스로 오마주임을 천명하고 있어서 예컨대, <소스 코드>의 결말부에서 뇌만 살아있는 제이크 질렌할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을 어머니를 비추는 장면에서 오마주 하고, <블레이드 러너>(1993)에서 윤리 테스트를 하는 모습을 마찬가지로 윤리 테스트를 수행하는 팀장 서연의 모습으로 오마주 하며, 결말부에 탈출에 성공한 '정이'의 모습은 <아이, 로봇>에서 자각한 주인공 로봇이 홀로 우뚝 서서 해방된 로봇들을 바라보는 장면과도 같다.
어쨌거나 이 작품이 중요한 건 AI와 로봇과 같은 미래의 디스토피아 위기에서 AI 자체의 위협에 의한 인류의 항거 같은 'AI vs 인간'의 대립 구조를 보다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데서 찬사 받을 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터미네이터'는 이 분야의 터줏대감이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경우는 단순히 AI에게 세계의 통제권을 빼앗긴 인류가 그들이 창조한 살인로봇과 맞서 싸우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논한다. 물론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보여준 압도적인 특수효과와 이미지들은 대단했고 쇳덩어리인 기계에 '부성애'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녹여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지만, 어찌 됐건 그 영화에서 위기의 본질은 '스카이넷'이라는 '인간을 위협하는 AI'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영화 <정이> 속에서의 위기는 결국 그 근원이 인간에 의한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 쫓아 들어가면 인간과 인간의 분쟁을 넘어 영생을 노리는 인간의 탐욕과 같이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진행된다는 게 다른 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뇌 데이터의 라이센스에 대해 설명해주는 안내원도 실은 자기 라이센스를 가장 낮은 등급에 팔아버린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뇌 데이터의 이전이 가능해서 육체의 의미가 상실된 미래에서 '전자두뇌'의 등급에 따라 인권이 차등적으로 제한되고 인간의 데이터를 비즈니스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묘사는 이 장르에서도 손꼽을 만큼 뛰어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살고자 하는, 특히나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스페이스 콜로니를 낳고 AI와 로봇을 만들었으며 자원을 독점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소멸시키며 인간의 인간성 마저 사고파는 세계. 이 끔찍한 세상에서 '인간의 탈'을 벗지 못한 이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란 사실상 죽음이나 다름없는 용병 활동 정도가 전부다.
극중에서 정이는 딸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도록' 그 값비싼 생체 의료 시술을 받게 하기 위해서 용병으로 뛰는 건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뇌 데이터까지 가장 낮은 등급의 라이선스(뇌 데이터를 어떤 용도로 사용해도 괜찮은)를 받으면서 팔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서연 팀장이 자신의 어머니를 고문과 같은 실험실에 몰아넣으면서도 직접 그 모든 걸 주관해야 했던 건 '전쟁 영웅'으로서 그녀의 어머니가 생전 가지고 있던 가치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자기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어머니가 어떤 식으로 '사용'될지 모르니까)
극의 중후반부 이후 콜로니 간의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전투 로봇에 대한 사업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뒤 회장이 사업을 중단시키면서 마침내 '범용 전투 로봇 Jung E'가 섹스 토이로 전락할 위기에까지 처하자, 그녀의 딸 서연은 마침내 자기를 위해 모든 걸 바쳤던 어머니에게 다시 인생을 돌려주고자 그 자신을 희생한다.
그렇게 지옥 같은 세상에서 딸을 향한 지극한 모성애와 어머니를 전쟁 영웅으로 살아가게끔, '상품'으로 만들지 않기 하기 위해 고문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던 모녀의 비극은 그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영화 <정이>는 모녀의 이야기 못지않게 시종일관 서연과 대립각을 세우는 연구소장 상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한 부분을 남긴다.
처음에는 연기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만 정체를 알고나면 모두 이해 되는 연구소장 상우
자기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산 사람을 귀신으로 오해하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디아더스>(2002)처럼, 회장의 뇌 데이터를 받은 분신인 소장 상우는 회장을 빼닮아 성과에 열을 내고 재미없는 유머를 던지고는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누군가의 복제품이라는 걸 알지는 못한다.
신하균 주연의 영화 <더 게임>(2008)에서 부자가 젊은 사람과 '몸을 건' 내기로 서로 뇌를 바꿔 젊은 몸을 갖게 되는 것처럼 상우는 크로노이드 회장에게 영생을 위한 '새 터전'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작 회장은 상우를 보면서 '나 자신이 아닌 것 같다'며 폐기 처분을 서연에게 지시한다. 어째서일까.
두 번째 문제인 생물 자아와 전자 자아의 중복은 의심할 여지없이 각자 다른 개체가 될 것이다. 변환된 의식과 내가 공존했을 때, 두 의식이 완벽하게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자아로 볼 수 있겠지만, 이미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의 동인’이 분리된 상태에서 그것은 결단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중략)... 그러므로 잠든 생물 뇌를 제거하고 전자두뇌를 몸에 이식하는 따위의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나를 죽인 뒤에 알지도 못하는 또 다른 나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경민, <인간과 사유> 10장 '트랜스 휴머니즘과 양자인간' 중
잠깐 재미없는 이야기를 좀 이어가자면, 지금은 요원할 일일지 모르지만 일론 머스크가 '뉴럴 링크'로 뇌와 디지털 세계를 이어보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언젠가 뇌와 디지털 세계가 연결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때도 '나는 나인가'하는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필자의 저술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아무리 나의 뇌를 완전히 복제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해도 그게 나와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할 리가 없다. 그건 단지 나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또 다른 개체일 뿐이며, 윤리적 문제를 떠나 나의 이익을 생각하더라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크로노이드 회장이 상우를 폐기처분하려는 건 당연해 보이는데,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어째서 서연은 사실상 자신의 어머니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나 다름없는 'Jung-E 18호'를 해방시켰느냐다.
앞서 안내원처럼 상업용으로 전락할 위기의 정이에게 마지막 탈출을 권하는 서연
극 안에서 생각해 보면 서연은 자기 때문에 삶의 모든 부분을 포기한 어머니가 그 자신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다면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연은 정이 18호에게서 딸의 기억과 모성애 부분을 삭제하고 그녀를 해방시키는데, 이 부분을 다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 보면 먼 미래의 인간이 진정으로 육체와 정신의 자유를 얻으려면 일단은 '육체'라는 신체를 벗어나고 그다음은 인간을 옭아매는 온갖 번잡한 인간의 욕구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에서 잠깐 다룬 적이 있는 이 개념은 아마도 인간이 '전자화' 되었을 때는 우리가 인간일 때 느끼던 욕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욕구를 지니게 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매슬로우의 욕망 단계 이론처럼, 인간 수준에서 느끼던 욕망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면 한계를 벗어난 만큼의 새롭고 고차원적인 욕망이 생겨날 수 있다. <정이>에서는 그것이 '자유' 정도로 표현되지만 윤리적, 사상적으로도 인간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만큼 진보할 가능성이 있다.
어쨌거나 그런 점들을 차치하더라도 <정이>에서 묘사한 '전자 자아'의 자각 과정은 흡사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을 보는 듯도 하고, 그 과정에서 다룬 전자화된 인간의 인권 문제는 <바이센테니얼 맨>(2000)의 주인공을 보는 듯도 하다. 앞선 SF 대작들의 발자취가 어느 정도 묻어있기는 하지만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꾸준히 외쳐왔던 인본주의적 발상은 특히 이런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계에서 아이러니를 극대화하며 더 빛을 발하지 않나 싶다.
<정이>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이, 로봇>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긴 한다
마지막으로 혹자는 <정이>의 결말이 <아이, 로봇>과 닮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모양새는 비슷할지언정 사실 그 주체가 완전히 다르다. <아이, 로봇>에서 자유를 얻은 로봇은 그야말로 AI이고, <정이>에서 자유를 얻은 로봇은 한때는 '정이'로 불렸던 '인간'이다. 쇳덩이와 전자신호뿐인 육체라도 그 속에 들어있는 게 인간이라는 점이 <정이>의 결말이 보여주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로봇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그 속은 인간이듯이, AI와 로봇, 디스토피아적 미래라는 틀을 썼지만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정이>는 기존의 장르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작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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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공식 채널, <정이>(2022) 예고편 중
-넷플릭스, <정이>(2022) 중
-영화 <소스 코드>(2011) 스틸 컷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스틸 컷
-영화 <아이, 로봇>(2004) 스틸 컷 및 영화 내용 중
-영화 <터미네이터 3>(2003)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