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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 망한 길>

아바타 2, <아바타 : 물의 길>

by 민경민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같은 말을 하고 비슷한 생김새를 한 사람끼리도 속을 알 수 없어 무한 불신에 빠지는 지경에, 언어는 커녕 생김새조차 완전히 다른 다른 종을 이해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아바타>는, 마음의 눈과 귀가 닫혀있는 인간이 대상의 본질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영화적으로 잘 그려냈던 점에서 마땅히 찬사를 받을만했다.


작중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해 나비족의 신체에 의식을 옮겨 나비족의 감각을 얻고 그들의 터전에서 문화와 언어, 삶의 양식 등을 배우는 과정은 실로 우리 인간이 서로를 이해할 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과 나비족이라는 이종 간의 교류가 아니어도 우리 인간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상대를 이해할 때 먼저 상대의 외적인 모습을 모방하고 나아가 언어를 배우며 그들의 행위를 따라 하는데, <아바타>는 이 모든 과정을 '아바타'라는 가상의 존재로 치환해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깔끔하게 관객에게 '보여'준다.


물론 이 부분에서 우리가 외국에 나가더라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는 않듯이, 타자인 외국 사람을 그들의 시선으로 이해해볼 수는 있어도 그들이 될 수는 없기에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아바타' 역시 잠시 몸을 빌린 것일 뿐 나비족의 일원으로 그들이 겪는 감정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바타>에서는 제이크 설리가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에이와'의 품에서 자신의 아바타로 완전히 의식을 전이시키면서 진짜 나비족으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것은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의 모든 역사와 각 개체의 정신을 한데 모은 집단지성이자 의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사건으로, 어떤 완전한 이해란 단순한 모방과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넘어 그들이 적층한 그 모든 것들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진정한 이해란 무엇인가'에 대한 뛰어난 영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지 탐욕스러운 인류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원주민의 대결로 영화를 이끌었다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영화로 막을 내렸겠지만, 이처럼 <아바타>는 이해의 원리와 그 과정을 압도적인 미장센으로 풀어내면서 객석에 앉은 관객을 제이크 설리의 시점을 빌려 마치 나비족이라도 된 것처럼 강렬한 몰입을 선사,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그런데 올해 개봉한 <아바타 : 물의 길>(2022, 이하 '아바타 2')은 시작부터 전작의 뛰어난 점을 엎어버리면서 그 불길한 서막을 올린다.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조금 들어있습니다. 관람 예정인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십시오.

바다 부족으로 도망친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사진 : 영화 <아바타 : 물의 길>(2022) 스틸컷



인간의 육신까지 버려가며 위대한 이해의 장으로 나아갔던 '대족장 제이크 설리'는 별안간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가 되어서 갑자기 부족을 버리고 도망자 신세를 자처한다. 사실 어떤 영화적, 철학적 의미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전작과의 연속성으로만 따져보아도 이 같은 설정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기계 문명과의 불가능한 싸움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부족장이 갑자기 '문명인들이 무섭다'며 정든 고향을 버리고 아무 관계도 없는 바다 부족에게 찾아가 결과적으론 해를 끼치게 된다.


단순히 놓고 보면 나비족을 위해 자신의 고향인 인류와도 대적했던 주인공이 갑자기 인류가 무서워서 같은 동족에게 해를 끼치는 꼴이 아닌가. 이것만으로도 벌써 이 영화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아무리 무대를 옮겨야 했다지만, 자기 존재를 부정해가면서까지 옮겼어야 했는가. 영화는 결국 갑자기 생겨난 두려움의 원인을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메시지로 가득 채우면서 관객에게 억지로 동의를 구하지만 이 역시도 전작의 제이크 설리가 보여줬던 태도에 비춰보면 쉬이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쯤해도 이 영화를 어떻게 3시간 동안 끌고 갈지 걱정이 될 수준인데 그나마 작품 속 스토리는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가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면서 영화의 런타임이 비어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아바타>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담론인 '이해'에 관해서는 작품이 시작부터 너무 큰 타격을 입어서 그걸 표현하려고 해도 이미 회복불능 상태가 되었다. <아바타 2> 역시 나름대로 새 부족의 바다 환경에 적응해가는 제이크 설리 가족의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아바타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그건 이미 바둑판을 엎은 뒤에 기억을 더듬어 바둑알 몇 개를 간신히 판 위에 올려두는 정도에 불과하다.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안타고니스트인 쿼리치 대령마저 '이해의 장'으로 끌어들이는데 결과적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신파극으로 이어내면서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로 마무리 짓고 만다.


<아바타 2>가 시리즈를 관통하는 담론의 뿌리까지 뽑으면서 부성애와 가족을 강조하는 그 속내는 아무래도 보다 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보편적인 주제로 손익분기점을 어떻게든 방어하려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게 아닌가 싶다.


바다 부족 일원들 *사진 : 영화 <아바타 : 물의 길>(2022) 스틸컷



세계관도 크게 축소돼서 판도라 행성 전체를 무대 삼은 것 같은 스케일을 자랑했던 전작과는 달리 <아바타 2>에서 도주한 제이크 설리가 상대하는 대상도 이전에는 인류라는 거대한 적이었다가 신작에서는 기껏해야 포경선과 쿼리치 대령의 블루팀뿐이며, 그들과의 싸움도 바다 부족이 있는 해안의 연안 정도다. 종족의 사활을 건 전투였던 거대한 명분은 온데간데없고 가족애로 똘똘 뭉친 '가족 구출 작전'이 이 영화의 주된 동력원인데 그나마도 2022년에 만든 영화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시대적인 연출로 가득하다.


그래도 그저 미장센을 보는 재미로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괜찮은 선택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보여주기 식' 이미지가 많고 전작에 비해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미장센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어쨌거나 압도적인 영상미를 갖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특히 '툴쿤' 종족의 등장 이후 볼 수 있는 거대 고래와의 교감은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두고 그 장면만 감상하더라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전작인 <아바타>를 기대하고 갔다간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예쁜 것 보러 간다'거나 4D나 IMAX 같은 특별 상영관의 독특한 체험을 경험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이 작품을 제대로 완주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 꼭 이 작품을 봐야겠다면 잠시 정신을 다른 '아바타'에 업로드하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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