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짜 운명이 존재한다면, 지금 내 선택이 옳을까?

<에브리 씽, 에브리 웨어, 올 앳 원스+>

by 민경민
3.PNG
포위된 형국에 갑자기 립밤을 씹어먹는 웨이먼드



운명을 믿는 사람이라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고 내 삶의 결말도 정해져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별난 행동을 해도 그것도 정해진 일이었을까?'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싶지만 요는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차분히 앉아있다가 난데없이 백텀블링을 한다면 지금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한 게 된다. 그런데 이 엉뚱한 행동이 단순한 호기심과 그나마 일상 속에서 가능한 행위에 불과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엉뚱한 선택을 해버리면 과연 그때는 어떻게 될까?


33.jpg


에블린의 가족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의 주인공 에블린은 가족들과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이민자로 철없는 남편과 반항끼 가득한 딸,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서 힘겹게 생활을 이어나가던 사람이었다. 언어도 간신히 적응한 마당에 타국의 법률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터. 나름대로 머리를 싸매고서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산처럼 쌓인 영수증을 정리해 보지만 국세청에 불려 간 그녀는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영락없이 망할 판에 놓인다.


그런데 국세청 직원을 만나러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의 남편이 별안간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는 에블린에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매트릭스>의 앤더슨이 의문의 전화를 받고서 출근길에 요원들을 피해 달아나는 것처럼, 갑자기 위험에 처했다며 그녀에게 청소 용구실로 들어가라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은 다중우주의 또 다른 남편이 현실의 남편의 정신에 연결된 상태. 갑자기 등장한 그는 선택의 순간에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면 동시에 다중우주에서 수많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나와 연결된다는 걸 에블린에게 알려준다. 그러자 마치 <매트릭스>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앤더슨이 출근 중에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별안간 요원들에게 쫓겼던 것처럼, 에블린은 다중우주에서 온 남편의 메시지를 읽고 마침내 엉뚱한 행동과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기본적인 설정은 다중우주의 수많은 선택지로 갈라진 또 다른 나의 능력을 빌려오는 것이다


국세청 직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한 뒤부터 에블린의 삶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 인간이 태어난 이상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법률'과 '세금'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범법자가 된 에블린은, 중요한 순간마다 이상한 행동으로 다중우주의 '또 다른 나'와 연결하면서 그들의 재능을 끌어와 현실에 벌어진 난장판을 헤쳐나가기에 이른다.


시작은 엉뚱한 발상의 SF 영화로 유치하기까지 하지만 점점 결말로 치달을수록 이 영화가 던지는 주제는 묵직해지고 철학적으로 바뀌어간다. '그때 그랬다면'의 결과로 만들어진 무수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하면서 에블린은 회한에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내 삶을 버리고 저 세계로 가겠다며 무리한 투정도 부리지만 결과적으로 그녀가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에블린이 마주한 다중우주의 삶 속에서, 어떤 삶은 첫사랑인 남편과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화려한 여배우가 되어있는 삶도 있고, 또 어떤 삶은 같은 선택을 했는데도 넘어지면서 눈을 실명해 뛰어난 가수가 된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삶은 지금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주유소 알바를 하고 있는 자신의 삶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무수한 삶 속에 있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9aaf544a134e8ce6540a565565414d14ee7239e.jpg
저주에 걸려 험한 말을 쏟아냈지만 결국 스즈메와의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스즈메의 이모


잠시 영화를 떠나 현실로 돌아와서, 엠제이 드마코의『부의 추월차선』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가난이란 가난하게 만드는 선택의 결과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처음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선택도 인생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 각도를 그대로 유지하면 꽤 큰 차이로 벌어지게 되어서 작은 선택들이 결국 가난한 인생을 만든다고 말이다.


실제로 인생을 살면 그 말이 맞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 생각에는 허점이 하나 있다. 만약 어떤 선택을 하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선택한 인생이 있다면 어떤가. 부가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그런 일을, 기꺼이 '엉뚱한 행동'으로 나아간 사람들 말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스즈메의 이모는 사다이진의 주술에 걸려 젊은 날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스즈메를 거두어들였을 때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마는데, 스즈메만 없었다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절규하지만 결국 주술이 풀린 뒤에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스즈메와 함께한 삶 자체가 소중한 것'이라며 오히려 그러지 않았더라면 스즈메와 자신이 쌓은 추억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것처럼 내게 손해가 될 것 같지만 그 자체로 인생에서 값진 경험이 되거나 인생 자체가 되는 일은 분명히 있다. 마치 부모와 자식 관계가 그러하듯 말이다.


11.jpg
다른 우주에서 꽤나 성공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할 세탁소의 삶'을 원한다는 웨이먼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속의 중심 플롯이 에블린과 조이 부녀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결국 애써서 열심히 살아봐야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애늙은이 같은 소리로 '베이글 블랙홀'을 만든 조이의 또 다른 자아인 '조부 투파키'와 에블린이 벌이는 '전쟁'은, 사실 현실의 볼품없어 보이는 자기 인생과 그 인생에 놓인 모든 결과물들이 과연 덧없고 무의미한 것인지 판정 짓는 한 판 승부라고 볼 수 있다.


다중우주 속 가장 화려한 성공을 거둔 배우의 삶에서 에블린은 '위대한 캐츠비'가 되어 나타난 자신의 남편과 과거 이야기를 회상하며 '새 삶을 시작해 보자'라고 하지만 정작 다른 우주에서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난 남편은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너와 세탁소도 하고 딸아이도 낳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라고 말하며 거절한다.


사실 에블린의 딸 조이도 '조부 투파키'라는 빌런이 되어 온 멀티버스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조이는 자신을 기꺼이 선택한 단 하나의 '에블린'을 찾고 있었고, 결국 돌고 돌아 찾은 현실의 에블린이 바로 그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멀티버스에서 '성공한 에블린'들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자기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곳에 다다른 것은 맞지만, 그들 중 딸 '조이'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에블린이 현재 자신의 차원에서 선택한 삶은, 어찌 보면 '성공의 기준'에서는 완전히 엉뚱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한 셈이지만 그것이 결국 '조이'이라는 자신의 딸과 남편, 그리고 가족이라는 인생을 갖게 해 줬다는 점에서 완벽한 성공이었던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엉뚱한 선택으로 멀티버스에 접근했던 에블린은, 정작 멀티버스의 무한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거부할 만한 '엉뚱한 선택'을 다시 함으로써 그 모든 삶 속에서 최종적으로 단 하나의 삶을 선택한다. 바로 남편과 조이,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


비록 다시 처음의 현실로 돌아가 빠듯하고 국세청에 가서 머리를 싸매며 다시 영수증 더미를 들춰야 하지만, 오프닝 시퀀스와는 달리 마지막의 에블린은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분명 화려하지는 않고 법의 테두리에 갇혀 살게 될지언정, 과연 이게 실패라거나 덧없는 삶처럼 보일까.


남들의 눈에는 엉뚱한 선택처럼 보이는 삶을 살지라도, 혹은 오롯이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지라도 그 삶 자체에 의미가 충만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내가 무한한 멀티버스의 힘을 얻고 다른 삶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한다 해도, 결국 그걸 체험하는 나 자신의 경험과 기억까지 완전히 바뀌는 건 아니다. 그렇듯 우리가 만약 운명을 믿고 운명을 개척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있는 연속성을 지닌 이 세계의 이 순간이지, 이미 완성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고, 내가 여기에서 완성하고 싶은 단 하나의 삶. 조금 화려하지 않으면 어떤가.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이미 우리는 우리의 운명의 지나온 삶만큼 도착해 있으며, 그 지나온 삶에 벌써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운명이라는 게 인생의 모든 순간의 합이라고 한다면, 남은 운명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지금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렸다.


그저 타인들이 열광하는 '완성된 것 같은' 틀에 박힌 삶을 꿈꾸며 현재를 등한시할 것인가. 아니면 '엉뚱한 행동'으로 보일 만큼, 나만 간직할 수 있는 삶의 한 순간순간을 모아가며 지금 이 순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선택은 과거에 달린 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달려있다.




11.png?type=w800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했습니다.



*작가의 모든 글을 아래 채널에서 만나보세요.



*본문 사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메인 예고편 중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스틸 컷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2022) 스틸 컷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복순>이 재미없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