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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Aug 23. 2020

심리상담을 받아봐야겠다

나를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연습

    사실은 지난 6월에 통화버튼까지 눌렀다가, 시도하지 않았던 상담센터 방문을 진짜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러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고 한국임상심리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임상심리학자에게 상담받을 수 있는 병원을 검색해서 몇개를 찾았다. 시에서 지원해줘서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곳도 찾았다. 내일 오전에 전화해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곳으로 예약을 해야지.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이 내 생각과 마음만 고쳐먹어서 해결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빠졌다, 괜찮았다를 반복한다고 해서 무뎌지는 것도 해결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혼자 힘들어할 필요 없이 도와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일들을 통해 배운 것처럼, 이것도 내게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연습"일 것 같다.


나는 힘들고 불쌍한 것 같아. 그러니 좀 울자

    8월 동안의 나는 노트북을 켜고 앉아 하는 일은 몇가지 밖에 없다. #데이터사이언스 진로에 관한 여러 아티클 찾기, #진로결정에 관한 무료검사 해보기, #이력서쓰기, #이력서 쓰는법. 먹고 살 일에 관한 질문과 결정이 나에게는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스스로의 속도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나는 이성적인 결정보다 마음을 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다. 2년 간의 해외생활을 결정하고 3개월만에 훌훌 떠났다가, 7개월만에 돌아와서 4개월 넘게 손에 잡히는 무엇 없이 지내왔다. 물리적인 활동은 없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의 나는 쉴새없이 움직였다. 서울을 갔다가, 미국을 갔다가, 제주도를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왔다가, 여러 계산들이 왔다가 사라졌다. 


    6월 중순에 나는 전례없었던 감정의 늪을 경험하였는데, "우울증"의 증상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할 만한 시간을 지났다. 견뎌냈다기 보단 그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기를 버텼던 것 같다. 하루에 몇번씩 울컥하는 것이 올라와 울었고, 길을 걸으면서 울었고, 벤치에 앉아서 울었고, 잠도 안자고 시차에 맞춰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었고, 방안에 누워 여러 문제들을 가리키며 "이것들 때문에 나는 힘들고 불쌍한 것 같아. 그러니 좀 울자." 하며 울었다. 평소의 나는 두렵거나, 억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서러운 감정이 올라올 때 잠시 우울하거나 울 때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감정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정도로 울 만한 일들인가? 왜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힘들다는데 뭐! 나는 나를 불쌍해 할거야! 하고 생각해 버렸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감정적에 치우쳐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그런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하기 싫었던 것인지,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서럽다라는 단어가 꼭 맞다. 문제상황들 앞에, 문제관계들 앞에 겪고 싶지 않은 경험과 스트레스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서러웠다. 왜 이것을 해결할 수 없는건지, 해결하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고민했고 그러한 짐을 져야하는 것에 (안 그래도 힘든데) 서러워서 울었다.


    이런 감정의 폭풍은 일주일 뒤 자취를 감춰버렸다. 엄마에게 일주일 동안 고민한 것들을 정리해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되었던 듯 싶은데, 어쨌든 그렇게 6월과 7월, 그리고 22일이 지났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정말 해야 되는 일들만 처리했다. 진행 중인 경찰조사에 필요한 일들, 학자금대출과 관련된 일, 토플시험을 취소하는 일 등등. 마음을 고쳐먹고 아버지의 치료수발도 들었고, 유투브로 방송되는 온라인기도회도 거의 매일 참여했고,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친구들도 몇명 만났고, 맛있는 음식도 해먹었고. 그 밖의 일들은 해야 되는 숙제인줄 알지만, 오늘은 할 기분이 아니야, 금요일이니까, 주말이니까, 비가 오니까 등등 여러가지 핑계로 무기한 미뤘다. 하기 싫었던 것인지,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르바이트든, 운동이든, 운전연습이든, 취업준비든 내가 뭘 먹고 살지 그 궁극의 목표가 정해지면 해야지- 하고 미뤄온 것이다. 매일 사라지는 금쪽같은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 지금 갖고 있는 통장잔고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산을 해가며 미뤄온 것이다.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저 나에겐 시간이 필요해, 진짜 내가 누군지 알 시간,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 시간이. 이렇게 변명하면서 집에 돌아온지 4개월이 지났다.


신앙인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데. 

    마치 폭풍전야처럼 특별한 감정의 요동이 없이 지내다, 그동안 잠잠했던 문제가 다시 터졌다. 언제 괜찮았었는지 모르게 두 달여 전처럼 똑같이 서러웠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이 문제를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 빠르게 고민했다. 그 피하는 법이란, 부모님 집을 나가는 일이다. 지난번에 고민만 하다 관두었지만 이젠 실행해야겠다. 옳은 결정인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리려는 반항,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마음은 신앙인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데. 그런 생각의 끝에 얼마 전 "순종은 선택이다" 라는 라이트하우스 기도회의 메시지를 듣고, 갈등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순두부 같이 또 와장창 깨졌고, 반복되는 문제 앞에 의연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 지난날 고민만 했던 심리상담이 나를 도와줄 수 있진 않을까? 무기력함과 관계에 대한 짐을 덜어낼 방법이 있진 않을까. 심리상담에 앞서 고민만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들을 몇개 읽고, 발을 떼어 보기로 결심했다. 실제적인 해결책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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