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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Jun 15. 2020

시작이 반이랬다

우울할 시간에 글을 써보자

        기분이 퍽 나쁘다. 사람들의 양면성을 겪은 이후로 더욱 겁이 많아졌다. 양심 없는 쪽은 상대방인데, 왜 내가 더 불편해하고 걱정하는 것일까?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나를 타이르기로 한다. 네 몫이 아니야, 네 탓도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요새 나는 기본적으로 우울이 깔려 있다. 도통 어느 시점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짚이는 이유들은 있다.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는 내가 걱정된다거나, 빨리 벗어내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들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안 괜찮아도 괜찮다... 지금은 힘들어할 때가 아니야, 그런 것들은 털어버리고 해야 할 일들을 해야지, 하고 모든 감정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 그것을 이제야 알아차리고 나는 '안 괜찮은 것들에 안 괜찮아하는 법'을 연습 중이다.

        내 우울한 상태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은 늦잠이다. 지난주는 좀 새벽에 교회도 가고, 일찍 일어났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기는 아직 부족하다. 마음은 항상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리!인데, 그걸 아침마다 알람을 들으며 잊는다. 내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내 몸을 타이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아마도 이십구 년째 진행 중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지, 다짐하게 하는 어른의 모습들이 많았다. 내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누구의 어려운 사정을 남의 일이라 여기는 것,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자기 합리화하는 것,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치부하는 것.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나이가 들어도 순수하게 살 거야. 우리 엄마처럼! 그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때 묻지 않는 것, 계산하지 않는 것, 상처 받지 않는 것이. 

        매일 투썸플레이스 카페에 출근을 한다. 커피 값, 버스 값으로 매일 나가는 돈이 다 합해 적은 돈이 아니지만 꾸역꾸역 밖으로 나간다. 두 달 넘게 시험공부를 하면서 (그 시간 동안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상에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변화이다. 매일매일 여길 떠나가고 싶은 나라가 바뀐다. 말레이시아, 미국, 태국, 중국, 그리고 내 나라의 제주도... 그렇게 떠난 곳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하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내란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은 뭔가? 요즘은 진로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5년 뒤, 10년 뒤 계획 같은 거 어차피 세우나 안 세우나 모르는 일이니, 지금 하고 싶은 제과나 미용이나 배워서 일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들었다. 나는 여러 경우의 일과 진로를 생각해 볼 때, 그거 배워서 어디에 취직이나 할 수 있겠어? 계약직으로 일해서 그다음은 어떻게 되겠어? 그 일을 시작했을 때 10년 뒤에 정말 망해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복잡한 생각들을 하곤 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이다...

        2020년의 반도 거의 지나갔다. 6개월의 반이 좀 넘는 시간은 학교를 다녔고, 2개월 좀 넘게는 시험공부를 핑계로 아무것도 안 했다. 하지만 어떠한 일을 했는지로 내가 보낸 6개월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많은 실패와, 많은 문제와, 많은 결정과, 많은 위기가 있었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는데 나를 보호해줄 굳은살이 박히는 시간이었다. 성장하는, 또는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다고 섣불리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성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지금 내가 이십대를 돌이켜 봤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마흔 살쯤 되었을 때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낙심만 있지 않았고, 상처만 있지 않았다. 여전히 결정할 수 없고, 혼란스러운 문제들이 많지만, 그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나 자신을 돌보며 사는 것에 대해서 새로워진 것들이 많았다. 그것으로 내 마음은 낙심만 되지 않고 감사하다. 

        그래서 2020년 6월의 나는, 이제는 나를 좀 더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다독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작년 가을의 나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무한한 설렘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더 많이 불안하고, 잦은 우울함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광야의 훈련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이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지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모세는 40년을 준비되고, 40년을 순종하였지만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세의 인생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결과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누구의 인도를 따라 가는지, 누구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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