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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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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Feb 28. 2021

일주일 후

커다란 고래의 눈을 보고 있다. 고래의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주 커다란 동물의 눈만 보인다. 두툼하고 매끄러운 피부에 노란 눈을 쳐다본다.


그다음 바다를 바라본다. 고래와 같은 컴컴한 바다, 고래의 피부처럼 보이는 파도를 본다. 바다가 하늘이고 나는 하늘에 누워서 바다를 올려본다.


오늘은 한시간 정도 집에 들렀다. 뭘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일단 밥을 먹고 치울게 있을까 현관 밖에 내다놓은 아빠 신발들을 다시 베란다로 옮겼다. 죄 버리기 전 사진을 찍어 놓고 싶어서 아직 버리지 않았다. 아빠 물건을 정리하라고 하니 100리터 종량제봉투에 다 집어넣어 버린 남동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진 한장 찍지 않고 버리려고 하냐고 버리지 말고 놔두라 하니 봉지를 묶지도 않고 현관밖에 세워둔 것도.


겨울에 신발장 아랫칸에 자주 쓰는 장갑과 모자 등을 정리해뒀었는데 으레 그렇듯 아빠의 물건들은 그 위에 대중없이 쌓였고 그렇게 남동생이 정리한 쓰레기봉투에선 신발과 뒤섞인 모자 두개를 발견했다. 흙을 털고 사진을 두장 찍었다. 마지막 산책에 썼을 등산모자 두개. 생각없이 뒤집어 보니 희고 검은 머리카락 몇개가 곳곳에 남아있다. 아버지의 흔적을 이런 곳에서 찾는 것이 낯설다, 생각하며 핀셋으로 머리카락을 옮겨 놓았다. 하나하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버지의 임종의 순간서 다 하지 못한 이별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갈 수록 더더욱 감정이 짙어간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보다 며칠 후의 내가 더 슬퍼보인다 생각할까 우려된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아니 너무 슬픈 감정은 부러 벗어나려고, 일상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써야 되는걸까? 이쪽도 저쪽도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하며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90이 넘어 돌아가신 할머님을 보내고 3년을 힘들어 하셨다는 목사님은 장례식장 가서 아무리 나이든 어르신이라도 호상이다, 라는 얘기하지 마라고 주위에 얘기 하신다고, 그말처럼 내가 아마 결혼해 더 나이가 들었어도 가족과 이별하는 슬픔은 무게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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