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조용한 순간을 즐긴다.
티브이와 라디오에서 울리는 소리는 단지 내 귀를 울릴 뿐이지만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소리, 어딘지 모르게 허공에 들리는 누군가의 숨소리는 귀를 넘어 내 마음을 울리고 파동을 전한다.
마음이 울리면 비로소 나는 눈을 감는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 누군가의 숨소리는 곧 일정한 형상을 갖춘다. 나타난 형상은 지휘자의 지휘봉에서 시작돼 전투기가 만들어내는 궤적으로, 그리고 희뿌연 담배 연기를 거쳐 중세 교회의 모자이크 유리처럼 반짝이다가 이내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변화한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게임을 좋아해서 그런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미남과 미인의 기준이 만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경우가 많다. 눈을 계속 감고 상상을 이어간다.
형체가 그려진 백지장처럼 하얀 피부의 오뚝한 콧날, 우수에 젖은 눈망울을 소유한 소년과 소녀가 내 앞에 서 있다.
소년과 소녀는 이내 하나의 인물들로 탈바꿈한다.
이번에는 아는 사람의 얼굴이다. 집, 회사, 거리의 어딘가에서 마주친 익숙한 눈과 볼, 입술, 실루엣까지도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다. 그건 곧 3D로 입체화한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마치 내가 조물주가 된 듯 그 얼굴을 샅샅이 뜯어보기 시작한다. 소년은 눈을 키우고 귀를 좀 더 동글게, 소녀의 헤어스타일은 클레오파트라의 앞머리처럼, 입꼬리는 올라간 것이 복이 들어와 보기 좋겠다며 되뇐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음속 상상의 침전물이 고작 사람의 얼굴을 빚어내는 결과물로 끝이 난다는 것이 말이다.
실존하는 사람보다는 이야기 속에 창작의 결과물로 탄생한 네임태그를 단 남녀 주인공들이 훨씬 더 보기가 좋다. 남의 개인정보를 허락도 없이 이용하며 ‘요청하신 VIP 주식 단타 무료 카톡방입니다’ 따위의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일 따위는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존하는 인류는 이런 일을 서슴없이 벌인다. 전쟁도 일으키고 전염병도 연구한다.
사람은 사람 속에 살아야 사회성을 갖추고 좀 더 나은 사회화된 ‘인간’이 된다는 말은 잘못된 생각임을 나는 진작에 깨달았다.
사람은 고독할 때 진정한 ‘인류’로 진화할 수 있다. 누군가가 대중 속에 숨어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시간을 소비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 누군가는 평범한 ‘휴먼카인드’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대중과의 영속성을 끊어내고 다른 곳에서 가치관을 찾아낸 그 누군가는 좀 더 나은 ‘인류’ 또는 ‘3D로 입체화한 애니메이션 주인공’과 같은 선하거나 악한 의도를 가진 존재가 될 수 있다. ‘선과 악’ 둘 중 하나의 의도가 명학한 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적어도 분명한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사회화된 ‘인간’은 너무 평범하다. 평범함은 사회에 흔하디 흔한 감성과 상념을 전할 뿐이다. 고독함을 이겨낸 좀 더 나은 ‘인류’는 반면 독특하다. 혼자 지내며 많은 생각의 파도를 넘고 기록하며 연구한 끝에 마침내, 거장이 되어 갈 수 있다.
고로 <상상>의 <끝>은 언제나 외롭다. 하지만 그 과정은 거장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 가치는 무한하며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만큼 제한시간이 있지만 희망적이다. 희망은 때로 아프지만 사람을 사회화된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인류’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인류’가 되기 위해 티브이를 끄고 창문을 열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 크게 숨을 들이쉰다. 상상의 관념은 스스로 날개를 펴고, 내 머릿속을 날아다니며 외치기 시작한다.
ending.
start.
imagine.
break bad people.
인류=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