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with the book
- 외계인과의 조우를 준비하자
광활한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가 어딘가에 있다. 거대 문명을 이룰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지닌 생명체가 인간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하다. 지구는 우리 은하계 내에서 선택받은 행성이지만,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가 수없이 많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은하계에, 우리와는 조금 생김새가 다른, 무엇인가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UFO를 타고 먼 곳에서 날아올 미지의 생명체와의 만남을 갈구한다. 유튜브 동영상에서 UFO 영상을 검색하고, 영상의 댓글을 보면서 상상해본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마주칠 날을 꿈꾼다. 새벽녘 아무도 없는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거나, 깊은 밤 숲 속에서 캠핑하고 있거나, 아니면 학교 옥상에서라도 갑자기 UFO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날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외계인을 처음 대면한 순간에, 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아마도 나는 침착한 사람이기에 머뭇거릴 것이다. 처음 소개팅에 나온 20살 청년처럼, 나는 외계인을 앞에 두고 쭈뼛거릴 게 분명하다. 어쩌면 나는 외계인에게 처음으로 만나는 지구인 친구일 수도 있다. 외계인에게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다. 괜히 말을 잘못 건넸다가 외계인이 당황해서 우주선의 문을 닫고 도망가버리면, 인류 전체로서도,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손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책 예찬론자’다. 그렇기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외계인을 만난 그 순간 외계인이 놀라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당당하게 다가가, 등 뒤에 매고 있던 백팩의 지퍼를 자연스럽게 열고, 책을 꺼내 건넬 것이다. 말 대신 글로.
그런데, 갑자기 고민스럽다. 외계인을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책을 준비해둬야 할까. 지구라는 푸른 행성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기록되어 있는 소설책은 어떨까. 시시콜콜한 재미를 보장하는 에세이도 포기할 수 없다. 아차,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외계인이 우리말을 이해할 능력이 있어야 책을 선물하는 의미가 있는데 말이다. 애써 선물한 책을 외계인이 읽을 능력이 안 된다면, 그것만큼 김 빠지는 사건도 없다.
하지만 외계인은 웬만하면 우리 언어를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멀고 먼 은하계를 넘어,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 자체는 우리 인류보다 뛰어난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들은 분명 우리말을 해당 외계어로 바꿔주는 동시통역기 같은 특별한 도구를 눈에 부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그림책은 어떨까. 그림책에는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걱정이 된다. 외계인이 색맹이거나 색약이라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사실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외계인에게 어떤 책이 가장 필요할지 내용을 생각해 본다면, 가볍게 인류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선택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이 책만큼, 인류는 어디에서 왔고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 재미있게 다룬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나에게 아주 고마워할 것이 분명하다.
외계인과의 조우를 위해 언제나 가지고 다닐 책을 결정했으니, 이제 드디어 걱정을 뒤로하고 잠을 잘 수 있겠다. 그런데 심심할 때 이동하면서 내가 읽을 책 한 권과 <사피엔스>까지 총 2권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니, 지금보다 체력을 더 기르고, 조금 튼튼하면서 실용적인 백팩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겠다. 내일은 쇼핑몰에 가서 백팩을 고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겠다. 웬만하면 밤에 가려고 한다. 쇼핑몰 옥상에 몰래 올라가 떨어지는 별똥별이 있는지 봐야 하고, 그 별 중에 외계인이 타고 오는 우주 비행선이 섞여 있을지 자세히 살펴봐야 하니까 말이다. 내일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