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취미인 미래의 후배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사무실에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금요일 아침이라 상쾌한 기분인데, 거기다 조용하기까지 하다. 휴가를 권장하는 회사 방침에 따르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국장과 팀장이 자리에 없다. 책을 읽기 아주 좋은 분위기다. 마침 아침에 해야 할 급한 일도 없길래 패딩점퍼를 의자에 걸고 책상에 앉자마자 가져온 책을 펼쳤다.
그러자 지나가던 후배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대각선 칸막이 너머로 빼꼼히 쳐다본다.
“선배님. 무슨 책 읽어요?”
“응. 젊은 작가상 수상집이야. 북클럽에서 받은 거고. 관심 있어?”
“아니요. ”
관심이 없단다. 내가 이상한 질문이라도 할 것 같았는지 쏜살같이 자기 자리로 내뺀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어떤지 한두 마디쯤 물어보길 기대했는데 말이다. 요즘 후배들은 참 무람없네. 머쓱해진다. 책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멋진 후배는 언제쯤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는지.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들어 다시 책에 집중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는 사내 동호회가 몇 개 있다. 종교 모임, 야구회, 축구회, 농구모임, 여행. 이 중에 회비만 걷는 유령 동호회를 제하면, 아주 활동적인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운동모임만 남는다. 주말에 만나 함께 땀 흘리는 것도 모자라, 회사 업무와 가정을 돌보는데도 부족한 에너지를 쏟아내야만 하는 그런 동호회들. 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몇 년 전, 책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출퇴근하는 직장 선배 한 분에게 독서 동호회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철학 서적을 주로 읽는 고리타분한 분위기의 선배였지만 그라면 왠지 관심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회사에 독서 동호회가 없는데요. 이거 만들어서 좋아하는 책도 서로 권하고 이야기 나누는 거 어떠세요? 책 읽으면 업무에도 도움될 것 같아요!”
나는 당차게 제안했다.
“책은 혼자 읽는 게 편해. 그리고 여기 보면 알겠지만, 책 읽는 사람 몇 없어. 손에 꼽아”
웃기는 것은 선배의 그 답을 듣자마자 합리적인 핑계를 찾았던 사람처럼 쉽게 수긍했다는 사실이다.
‘하긴, 직장 동료들은 친구가 아니니까.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뒷말이 나올 수도 있고. 여기는 무엇보다 사람 간의 신뢰가 크지 않은 곳이니, 나의 좋은 취미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지’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보다 꽤 많은 후배가 직장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하다. 책 읽는, 책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참신한 후배들은 없다. 다이어트와 외모 가꾸기, 재테크 기법 배우기, 부어라 술 마시기, 사내 정치에 참여하기 같은 세속적인 활동에 골몰하는 모습이 직장 선배로서-그런 활동이 나쁜 건 아니지만-안타깝다. 그렇다고 함부로 조언할 수는 없다. 요즘은 후배들도 젊은 꼰대를 더 악질이라 취급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배우는 것도 즐기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학습에 대한 열의가 있으면, 이것저것 찾아보며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탐구를 계속하지 않을까. 모르는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책에서 갈구하는 것이다. 물론 호기심을 책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금은, 고지식한 면이 있다.
그런데 그런 고지식한 사람이 요즘엔 희귀하다. 원칙주의자이면서 고지식한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신뢰할 수 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주관이 강하면서, 뚝심 있는 사람.
나는 어쩌면 그런 후배가 그리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직장이 더 발전한다면 책을 좋아하는 후배가 입사할 수도 있겠지. 직장에서 책을 선물 받고 선물해주는 그런 일.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생각의 씨실과 날실, 나만의 실타래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