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주는 특별한 재미
코로나가 온 세상을 휩쓰는 사이,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상이 그 자체로 행복이었음을 느낀다. 특히 시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와 읽는 일이 주말의 중요한 일과였던 내게 ‘도서관 이용금지’를 딱딱하고 담담하게 담은 지방자치단체 명의의 문자는 청천벽력과 다름없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일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다. 나는 도서관 서가의 마음에 드는 위치에 무작정 서서 어떤 책이 새로 들어왔나 보는 것을 도서관이 주는 특별한 재미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도서관에 가기 전 신간을 확인하고, 대출이 가능한지 보고, 재빠르게 대출예약을 걸어놓은 이후 도서관을 방문한다.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 안의 서가를 서성이는 것은 잘 정리된 대형서점이나 동네서점을 방문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다. 특히 다른 이들이 반납한 책들이 질서 없이 쌓여있는 정리용 카트는, 심해의 난파된 보물선에 숨겨진 녹슨 수레나 다름이 없다. 먼지와 녹을 벗겨내면 드러나는 천년의 주보. 내게는 책이 보물이다. 정리용 카트에서, 무수히 서가를 거닐며 보지 못한 책들이, 나 여기 있었다며, 넌 왜 나를 찾아내지 못했냐며, 아우성치는 것 같다. 거기에서 취향에 맞는 책이라도 발견하는 날에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반납된 책이, 다시 제 자리를 찾기 전에 나를 만났다는 사실은 ‘인연’ 그 자체다. 우연히 맺어진 인연은 잘 짜인 삶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과 같다. 책이기에 불청객이 아니라 손님이라 할 만하다.
아내와 함께 집 근처 도서관을 방문했던 작년 1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마주했었다. 이번에는 정리용 카트의 무질서함과 그것이 빚어낸 어떤 형상이 나와 아내를 도서관 세계문학 서가 쪽으로 이끌었다. 거기서 발견한 <안나 카레니나>는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돼 있음에도 페이지 수가 상당했다. 아내는 “도전!”을 외치며, 완독의 결의를 다졌다.
아내가 “나, 이 책 다 읽었어”라고 내게 빙긋 웃으며 말한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려 1천5백 페이지가 넘는 그 책을, 아내는 완독을 넘어서 제대로 독파해냈다. 그 이후 아내는 200페이지 내외의 짧은 책들은 순식간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공간과 시간의 방에서 강한 수련을 하고 나온 사람처럼 독서력이 월등하게 세진 것 같았다.
아내는 연애 시절에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구매한다는 것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얼마든지 빌릴 수 있는데 왜 굳이 책을 사서 좁은 집에 둬야 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 예찬론자인 나와의 삶에 젖어들어서인지, 아니면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새로운 재미를 찾아서인지, 아니면 옆에 매일 붙어 있는 사람이 끼고 있는 것이 책이라는 것인데 호기심이 일어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지, 아직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로서는 아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일이 반가운 일이다. 아내는 완전히 변해 이제는 오히려 내게 출판사 북클럽 가입을 권할 정도였다. 완벽한 ‘전세 역전’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기적이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같은 취미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다.
이렇게 도서관은 나와 아내에게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하고, 아내가 두꺼운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게도 만들어줬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도서관에 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도서관 운영이 부분적으로 재개되고, 대출에 크게 문제가 없는데도 책을 빌리러 가는 발걸음이 쉽지 않다. 다른 누군가의 손을 거친 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이의 집에서, 자동차에서, 손길에서 움직였던 책들이 예전처럼 기껍지 않다. 1년 이상 계속된 코로나가 지워 준 멍울이다. 이 멍울이 희미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도서관이 주는 그 기쁨과 재미를, 다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