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개발서, 그리고...
“할아버지가 책 사줄게. 서점가자”
90년대 성북역 앞에서 구둣방을 운영하시던 서울 할아버지(외할아버지)가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남겨 준 특별한 기억들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올라 코끝이 찡하다.
별다를 것 없는 나른한 오후, 엄마와 구둣방에 들러 할아버지가 손님이 가져다준 구두를 수선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나면,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내 손을 잡고 300미터 떨어진 동네 책방에 데려갔다.
“보고 싶은 책 골라봐. 책 많이 읽어야 공부도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엄마랑 아빠 고생하는 거 봐봐. 책 많이 읽어야 해. 그렇구 말구.”
할아버지의 기대가 듬뿍 담긴 시선을 뒤로하고 고른 책은 ‘소년 챔프’-두꺼운 만화책-였다. 어린 나이인지라 소설책이나 수필집을 고르긴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사 집으로 돌아가던 골목길은 정겨웠다. 어린 시절 책방을 경험한 최초의 기억들이다. 내가 책방을 어려워하지 않고 찾아다니게 된 이유일지 모른다.
할아버지가 새겨 준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주문’은 그 시절부터 오랫동안 생활 속에 깃들었던 것 같다. 맞벌이하시던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책을 가까이했다. 엄마와 산책하러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눈에 든 책을 사 오기도 했다. 책을 언제나 곁에 두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삶의 트랙’을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가 모든 책의 장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책을 보는 안목이 형성되지 않았던 사춘기 시절까지, 나는 부모님이 사주셨던 자기개발 서적들을 주로 읽었다. 덕분에 비슷한 또래들로부터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자기개발서에는 적어도 옳은 이야기-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가 많아 내 손에 쥐어진 것뿐만 아니라 한동안 비슷한 장르의 서적들을 찾아 읽었다.
자기개발서를 어느 정도 꽤 읽어보니 책마다 비슷한 내용이 많았다. 쌀로 밥 짓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내용으로 구성된 자기개발서가 어느 순간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해도 자신을 바꾸려는 강한 ‘의지’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실천’이 따라주지 않으면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성공한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몇 가지 원칙으로 구분해 엮은 책들은 ‘아 그렇구나. 나도 이렇게 해봐야지’에서 멈추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온 경로를 바꾸려면 책상 앞에 앉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리책만 봐서는 요리사가 될 수 없다. 남산골 ‘허생’은 행동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샌님’에 불과했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데 필요한 요소에 연료와 가속 페달이 있다면, 연료는 ‘책’이요 가속 페달은 ‘행동’이자 ‘의지’인 것이었다. 어린 시절 서울 할아버지가 줄기차게 나를 서점으로 이끌었던 것도 내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한 연료를 채워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누군가 책이 인생을 바꿔줄 수 있냐는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그 책이 자기개발서라면, 자기개발서를 펴낸 저자의 방식대로 저자보다 열심히 살아봐”
하지만, 소설처럼 책을 읽어나가며 머릿속에 새로운 세계를 그려나가야 하는, 읽어나가는데 많은 정신력이 소진되는 그런 종류의 책들은 아직 자기개발서만큼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인생을 바꿔줄 수 있냐’는 질문에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아직 말할 수 없다’라고 잠정적으로 선언한다. 이에 대한 답, 아니 답에 가까운 깨달음의 1%만큼이라도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가 될까. 세상에 너무나 많은 책이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한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탄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