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추억하는 방법

-나만의 독서 메모장 활용하기

by 피터팬의 숲

2021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은 이제 지난 과거가 되었다. 아쉬운 기분에 마음이 깊게 내려앉았다가도, 새해라는 희망의 분위기에 다시 달뜬다.


신정을 포함해 내게 사흘간의 연휴가 주어졌다. 편안하고 산뜻하게 새해 첫날을 보내려면 뭘 할지 고민하다가 내가 작년 읽었던 책의 목록을 쭉 정리해보기로 했다. 수첩을 뒤적이니 제인 에어의 <오만과 편견>을 시작으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까지 세계문학은 물론이고 재테크에 대한 실용서적까지 나름의 계획대로 읽어왔다는 걸 발견했다.


읽은 책의 목록을 적어놓은 수첩에는 책 제목 이외에도 인상적인 대목을 적어두었다. 그 수첩은 하나의 메모장에 가깝다. 명칭부터 품격이 느껴지는 ‘독서 노트’라면 제목, 주요 내용, 소감처럼 일정한 형식으로 나름 장황하게 기록해야 해서 부담이 있는데, 생각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형식이라면 언제든 어딘가에 펼쳐 기록해 놓을 수 있어서 좋다. ‘독서 메모’ 정도로 이름을 붙일 수는 있겠다. 단, 다이어리처럼 기록한 날짜와 장소를 표기하는 게 나름의 원칙이다.


시간이 꽤 지나 과거의 ‘독서 메모’를 찾아보면 재미가 있다. 그 당시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구절에서 마음을 빼앗겼으며 어디서 이 메모를 기록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신기한 건 회상의 연쇄작용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읽었던 책을 어느 서점에서, 누구와 함께, 왜 샀는지부터 그 책이 지금 내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까지 ‘추억’의 실타래가 줄줄이 이어진다.


사실 읽은 책과 관련한 메모를 어딘가에 꼭 해두지 않아도 책에 얽히고설킨 생각들을 회상하는 방법은 또 있다. 자신의 집에 있는 책장이 그것이다. 책장에 다가가 어떤 책이 있는지 훑어보면 책의 제목이 보인다. 한 권을 빼서 스르륵 넘겨보면 된다. 그런데 책을 깨끗하게 보는 독자라면,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독자라면, 책에 필기구로 난잡스럽게 작은 글씨가 적혀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독자라면, 책장 끄트머리를 삼각형으로 접는 걸 아파하는 독자라면,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제대로 된 추억의 저장소가 될 수 없다. 책의 어느 부분에서 과거의 자신이 멈춰 서서, 그 구절을, 그 단어를 다시 음미했는지, 책을 스르륵 다시 넘겨보는 일로는 다시금 생각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뭔가를 추억한다는 것. 그것은 사진으로도 음악으로도 가능하다. 우선 사진은 생생하다. 사진 속에는 구체적인 모든 것들이 담겨있어서 쉽게 추억하기 좋다. 음악도 좋은 회상의 매개체다. 20살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진주 훈련소 행 입영 버스에서 들었던 드라마 풀하우스의 OST를 라디오에서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일렁거리고 군대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회상하는 자에게 사진은 상상할 기회를 앗아가며, 음악은 그 특유의 멜로디로 지나치게 감성을 조장-사실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책으로 추억하는 것도 단점이 있다. 책이 매개되지 않으면 추억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이 방식은 회상하는 이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준다는 게 뜻밖의 선물이라 할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독서 메모를 즐겨한다. 적당히 상상할 수 있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생각해내려고 노력하기도 좋다. 언제 어디서든 적을 수 있도록 가볍고 작은 크기의 메모장이 갖춰져 있다면 독서 메모에 더없이 좋다. 스마트폰의 메모장 앱을 이용하는 방법도 추천할 만하다. 그런데 아직은 이런 방식이 더 끌린다. 2021년의 두 번째 날, 2020년이 과거가 되어버린 오늘 작년의 독서 메모장을 펼쳐본다. 그리고 추억한다. 책이 전해준 나만의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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