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친구를 택해야 좀 더 인생에 도움이 될까
가정용 게임기가 희귀했던 세상이 있었다.
화려한 그래픽 카드가 내장된 높은 사양의 게임기가 보편화된 요즘과는 다르게 그 시절에는 8비트, 16비트 게임기도 구경하기 힘든 때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게 Y라는 친구가 있었다. 가까운 곳에 사는 같은 반 친구라 친하게 지냈는데, 나는 평일 오후 태권도 학원에 가기 전 항상 그 친구 집에서 게임을 하다 가곤 했다. 다행히 그의 부모님도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하는 나를 나쁘게 보지 않았는지,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 전까지 Y의 집에서 공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게임기 정도야 쉽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유복한 집안 환경에서 자라지도 아니었거니와,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어머니 덕택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게임기를 얻었다. 첫 게임기를 마주한 건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도 벼룩이 시장통을 이룬다는 유명한 지역생활정보신문에 아주 저렴하게 나온 게임기였다. 친구에게 빌붙는 게임 각설이가 이제 끝이라니, 기적의 결과였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태어난 지 10여 년 만에 친구 집이 아닌 내 집에서 눈치 보지 않고 게임하고 싶다던 한 소년의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또래보다 늦은 게임기 구매는, 또래보다 이른 독서습관을 가진 원인이 되었다. 학창 시절 아들이 교내 논술과 작문 시험, 독후감 대회와 백일장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한 일에 대해 어머니는 “내가 게임기를 좀 늦게 사준 탓”이라고 항상 자랑스레 말씀하신다.
사실 어머니의 말씀에 공감이 된다. 마땅한 놀 거리가 없었던 시절이라 좁은 반 지하에서 읽었던 책을 또 보고, 보고 또 보며 책과 친숙해졌던 그 시절이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저녁 늦은 시간 집에 올 때까지 책 내용을 곱씹으며 자유롭게 상상하던 시간이었다.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는 그러한 시간들이 분명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책은 최후의 친구였다. 그토록 원했던 게임은 재밌지만 시간제한이 있었다. “오늘은 2시간만 하고 꺼라”는 어머니의 가이드라인에 따랐기 때문이다.
게임이란 녀석은 하루에 잠깐 만날 수 있었던 친구였고, 책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죽마고우 같은 친구였다. 더구나 사람을 사귀는 데 서툴고 누군가를 믿는데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나에게 있어 책은 믿을 수 있고 변하지 않는 보물이었다. 책으로 인해 든든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듯싶다.
우습게도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게임이라는 친구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돈을 벌게 되고 자유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책이라는 죽마고우 같은 친구 대신 게임이라는 중독성 강하고 자극적인 친구를 더 찾게 된 것이다.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잠시라도 게임이라는 다양한 색감의 세상 속으로 피신하고 싶어 질 때가 많다.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모니터 앞에서 나는 그곳의 주인공이 된다. 게임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면 저장(SAVE)하면 안전하다. 우리 인생은 중간 저장을 할 수가 없다. 게임처럼 불러오기(LOAD)도 할 수 없다. 삐끗하면 그대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생애가 종료될 수가 있다. 게임이 매력적인 이유다. 게임이라는 친구를 나이 먹고 더 찾게 되는 이유다.
책이라는 친구는 유년 시절부터 여전히 한결같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친구고 가까이하면 삶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다. 종이 위에 인쇄된 게 활자뿐이라 상상력은 게임보다 더 커진다. 생각하는 힘도 그만큼 더 커진다.
게임과 책, 책과 게임. 어떤 친구가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 친구일까. 고민 끝에 나는, 두 친구 모두를 가까이하기로 한다.
하지만 30대 후반을 넘어 40대, 50대가 될 때까지 내 곁에 남아있을 친구가 무엇일지 예상된다. 그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더욱 충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그 친구도 나를 더욱 오래 만나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