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아깝지 않은 책이라는 산물
온라인에서 책을 싸게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고스러운 발품을 팔아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서점에 가는 이유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고민하는 자의 발걸음은 늘 무겁다. 집을 나와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얼굴을 하고, 넓은 하늘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야속하다며 다른 무언가를 찾는 눈길을 주며,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며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는 손길까지, 어느 하나 안타까움이 배어있지 않은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내가 곧 서점이라는 장소에 도착하면, 무겁게 짓누르는 고민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수척한 발걸음을 당당하게 옮겨본다.
큰 한숨을 뒤로하고 서점에 도착하면 나만의 ‘고민 처방전’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문제를 해결할 처방을 직접 내려주는 사람은 없지만, 서가마다 가지런히 정돈된 책의 표지에서 무수히 많은 저자가 두둥실 떠오르며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고민 없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집어 든다. 목차를 훑어보지만 내가 원했던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삶의 고단함과 어지러움을 덜어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다. 다시 책을 내려놓는다.
이게 아닌데. 혼자 중얼거리다 마른침을 삼키는데, 저쪽 어디쯤 정돈되지 않은 서가에 아무런 이유 없이 눈길이 간다. 특별한 기대 없이 다가가 책 하나를 집어 든다. 놀랍게도 내가 계속 생각해왔던 주제의,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었나. 우연이라기엔 이번에도, 저번에도,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던 기분이 든다. 서점이 가진 마법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서점 한편에 우두커니 선 채로, 신비롭게 만난 그 책을 펼쳐본다. 우연히 펼친 70페이지 어디쯤, 내 눈길이 머문 곳에 답이 있음에 놀란다. 쭉 읽어나가니 깨달음과 새로운 궁금증이 이어진다. 표지를 들춰보며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책인지 이제야 꼼꼼하게 확인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책에는 저자는 물론, 편집자, 디자이너 등 많은 조력자의 무궁한 노력이 담겨있다. 이들은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연구하고 골몰한다. 그야말로 지식과 노력, 지혜의 집결체다.
가격을 논하기는 싫지만, 책 한 권에 2만 원 미만의 가격이라면 정말 공짜와 다름이 없다. 우리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찾아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 자문을 듣고자 한다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책에는 고민하는 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뿐 아니라 정제된 지혜와 지식이 이미 담겨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줄 서 있다. 친절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놀라운 것이 책이다. 이 정도로 스스로 책의 가치에 대해 예찬하게 되면, 살아가는 동안 되도록 많은 종류의 책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경기장에서 다른 사람보다 많은 책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때 ‘서점의 마법’을 통해 내 손아귀에 들어온 책이 <독서의 神>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희대의 독서가 <마쓰오카 세이고>의 저서로, 책이 어떻게 인생을 통째로 바꾸는지 설명하고 있다. 또 다독술의 비결을 비롯해 독서의 즐거움에 관해서도 다룬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서는 미지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일’이라며, ‘무지에서 미지로, 그것이 독서의 참다운 묘미’라고 언급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다독을 위한 지름길은 없다’는 결론이었다. 다만, 다독하기 위해서는 독서 근육이 필요하고, 엄청나게 자주 읽고 쓰는 일이 독서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이며, 단련된 독서력이 다독을 이끈다는 진리를 깨우쳤다.
또 많은 책을 읽으려면 활자 중독이 되어야 하고, 활자 중독이 되면 이미 많은 책을 읽게 된다는 것, 그리고 많은 책을 읽으려면 책을 사야 하고, 책을 사려면 서점에 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서점에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을 고르려면 오프라인에서 ‘서점의 마법’을 느껴야 한다는 것.
오늘도 생각의 루프에 빠져든다. 서점에 대한 내 생각은 정말 뫼비우스의 띠가 아닌가. 하지만 책 한 권이 주는 가치는 정말 대단하기에, 시간을 들여 책에 대해 예찬한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