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는 책이 됐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을 읽었더니, 어느 날 침대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내가 책이 되어버렸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지금부터 상상의 시간이다. 레드 썬.
2월 21일 일요일 아침, 나는 최초의 ‘살아있는 책’이 되었다. 네모반듯한 책이 아니라 사람 형상의 책이다. 피부가 모두 파피루스로 만든 것처럼 갈색의 오래된 종이로 바뀌었다. 팔다리를 만져보면 책 넘기는 느낌이 난다. 샤르륵… 소름이 끼친다. 심장도 폐도, 항문도 사라졌는데 몇 시간이나 ‘생존’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호흡이 이뤄지고 ‘배라고 할 수 있는 어딘가’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생체시계는 멈추지 않았음을 느끼고 이내 안도한다.
아내는 주말을 즐기겠다며 지난밤 거실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아직 깨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겁 많은 아내는 나의 변해버린 모습을 보면 혼비백산해 펄쩍펄쩍 뛰어다닐 것이다. 그러면 아랫집에서 “참다 참다 또 올라왔네요. 아무리 아파트 시공이 엉망이라지만 서로 예의는 지켜야죠”라는 멘트를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초인종을 누르겠지. 그래서는 안 된다. 아내가 최대한 놀라지 않게 내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상황을 궁리해본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는 아내다. 메시지를 보내 놓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스스로 시간을 벌어보자고 다짐한다.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주는 스마트폰 앱을 어렵게 눌러 실행하고 목소리를 내 본다. 목소리가 나온다. 다시 또 안도한다.
“여보. 지금부터 내가 적어둔 말 잘 보고 대처해줘. 아침에 일어났더니 내 몸이 책이 되어버렸어. 농담이 아니라 실제상황이야. 황당한데 너무나 침착한 내가 놀라울 지경이야. 지금 안방으로 오면 충격으로 쓰러질지도 모르니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줘. 우선, 119에 전화를 해서 남편이 아프다고 해. 그런데 119 직원에게 국정원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꼭 말해야 해. 구급대원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그러면 최소한 이상함을 느낀 구급대원이 경찰까지 데려올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기자가 있거든. 거실 장 첫 번째 서랍을 열면 **일보 손**라고 명함이 보일 거야. 전화해서 책으로 변해버린 남자에 대한 세계 최초의 기사를 쓸 기회를 준다고 말하고 바로 끊어버리고 우리 집 주소를 문자로 보내줘. 그 기자와는 신뢰가 있는 사이고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달려올 거야.”
여기까지 메시지를 저장하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살짝 정신이 돌아오자 내 몸을 여기저기 살펴봤다. 종이책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니 꿈같았다. 책을 좋아하고 훗날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며 살아오지 않은 나였다. 악한 삶을 살았다면 신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수긍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능시험을 마친 예비 대학생이 겨울방학 중 신입생 OT에 참석할 때처럼 들뜨는 느낌이 든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재밌는 인생’을 살아볼 기회라는 생각이 스멀거린다. 다시 메시지를 적어 내려가야 한다. 없어진 입이지만 이를 악다무는 생각을 해본다.
“여보. 회사 생활하면서 내가 주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이러려고 열심히 공부해 온 게 아닌데 말이야. 그런데 이제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책을 좋아하던 남자, 다시 태어나다’ 괜찮지 않아? 메이저 신문사에 재직 중인 기자가 보도해주면 핫이슈가 되는 거지. 거기다 경찰이나 운 좋으면 국정원 직원들까지 같이 오게 될 텐데, 그 기자는 긴박감이 느껴지는 현장감도 스케치할 수 있을 거야. 나를 알게 된 것은 참 행운이라고 느낄 테지. 안 그래?”
갑자기 살아온 인생을 회상해 본다. 내신성적이 좋아 수시모집으로 수능시험 없이 서울 상위 10위 권 내의 대학에 입학하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26살의 나이로 안정적인 직장에 안착했다. 큰 고비 없이 살아온 인생인데, 드디어 내 앞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내 몸의 생체시계가 제대로 돌아가지만 언제 온몸의 힘이 빠질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리는 일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이리라.
“여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지지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얼마나 오래 이런 삶이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처럼 나를 도와줘. 우리가 부른 사람들이 찾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자고”
나는 이렇게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완성했다. 그리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