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부부가 ‘모두 말이 없으면’ 생기는 일

둘 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다

by 피터팬의 숲

아내는 말이 없다. 그런데 나도 말이 아내만큼 없다. 회사에서는 되도록 필요한 말만 하고 싶어 한다. 회사 사람들은 말한다.

“둘이 같이 있으면, 둘 중에 누가 더 말을 많이 해?”

회사에서도 수다스러운 편에 속하지 않는 우리 부부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하거나,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명왕성까지 닿을 정도로 서로 소리를 질러대는 순간이나, 너무 신나고 즐거워서 같은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는 모습까지도,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 같다.

워낙 말이 없는 사람들인 만큼 회사는 나와 아내 모두에게 ‘인사팀’ 직무를 맡긴 적이 있다. 인사팀 구성원이 가져야 할 자질 중 하나는 당연히 입이 무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크고 작은 인사발령이나 특정 직원의 가족사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룰 수도 있는 직무라 믿을 수 있고 안정감 있게 업무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회사는 선호하며, 그 보직에 앉힌다.

처음 인사팀 보직을 맡게 된 것은 아내였다. 수더분하고 차분한 아내와 인사팀 업무는 서로 ‘찰떡궁합’이었다. 직원들의 휴가 관리와 휴무일 수당 지급과 같이 직원들과 자주 부딪혀야 하는 일도, 아내 특유의 ‘얼음장 같은 차분함’으로 잘 물리치곤 했다.


이후 회사 조직개편으로 아내는 다른 팀으로 전보 발령이 났다. 그런데, 아내의 자리에 내가 발령을 받게 됐다.


“이야~ 부부가 돌아가면서 회사 인사를 주무르는구나!” 비아냥대는 직원도 있었다.

발령을 받고 나니 조금 우스웠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부부를 나란히 그 자리에 돌아가면서 앉혔어야 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렇게도 적임자가 없다는 것인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사 업무는 아무나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의 자부심은 가질 수 있는 일이었다.


“나한테 인수인계 언제 해줄 거야? 회사에서는 바쁘니까, 집에서 할까?”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24시간 인수인계가 가능한,

한 회사에 근무 중인 부부의 장점을 한껏 살려, 우리는 그 많은 업무를 재빨리 인수하고 인계받았다. 이후 2년 가까이 아내가 했던 일에 노사협의회 업무까지 덤으로 받아 일했다.

인사팀에서 아내가 얼음장 같은 차분함을 발휘했다면, 나는 ‘단호박 같은 원칙주의’를 내세웠다. 가령 출근 기록할 때 단 1분 지각도 봐주지 않았고 어떤 정보든 꽁꽁 싸매고 다른 직원에게 흘리지 않았다. 물론 회사 비밀 정보라 할지라도 어떤 순간에는 새어나갈 수 있지만, 그 시작이 인사팀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뭐든 처리했다.

어떤 선배 직원으로부터 “너 같은 애 처음 본다. 네가 회사를 위해서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뭔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도 사실 얻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봤다. 회사의 구성원이었고, 영원히 인사팀에서 근무하지도 않을 것이며, 회사의 수족이기 전에 다른 이의 동료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내 가치관에 따라 꾸준히 일했고, 입사 동기들을 포함해 나의 업무 방식에 대해 불만을 품는 이도 꽤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다른 부서의 다른 업무를 맡고 있지만, 나는 다시 인사팀 일을 하더라도(다시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일할 것 같다.

말은 없지만 진중하게, 말은 없지만, 신뢰감 있게.

바른 원칙이라면, 그 원칙을 지키는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무엇보다, 말 없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내처럼 인사팀 업무를 꽤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