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시간이 긴 부부라면, 사내부부가 좋을 수도

저녁 식사 시간은 소중하니까

by 피터팬의 숲

같은 회사에 다니면 직장생활에 대해 공들여 설명할 일이 없어서 좋다.

“오늘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으로 시작하는 평일 저녁의 일상적인 부부 대화에서 나와 아내는 그런 앞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길고 장황한 대화를 좋아하는 부부라면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직장과 사는 집이 조금 먼 편이라 저녁 시간의 1분 1초가 소중하다. 녹초가 된 몸으로 퇴근 후 밥만 먹었을 뿐인데 저녁 10시를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푸성귀 팀장 오늘 너무했어... 다른 팀원들도 보는데 어이가 없더라고.” 내가 말했다. “하아. 그 저돌적인 성격은 우리 회사니까 봐주는 거지... 다른 회사면 진작에 퇴사 감이지. 그럼!” 아내는 오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콕 집어 말해준다. 미션 컴플릿.


사내부부가 아닌 보통의 부부라면 어떨까.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평범한 일상에 대해 다른 회사에 다니는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면 기본적으로 화자가 처한 환경과 관련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가령 ‘아재 철강’이라는 철강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건설회사에 다니는 아내에게 까탈스럽고 비합리적인 어떤 직원에 대해 푸념한다면 꽤 많은 시간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 근무해 본 것이 아닌 이상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 대화 하나를 위해서, 남편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는, 그 푸념을 듣는 아내는 필요 이상의 정신 에너지를 동원해야 한다. ‘아재 철강’에 다니지 않지만, 저녁 시간에 세상 소중한 우리 남편을 열폭하게 만든 그 꼰대 같은 누군가를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늘 있었던 일 중 저녁을 먹으며 화젯거리로 올릴만한 이야기는 이미 회사에 쫙 퍼져서 모르는 직원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을 받기 위해 예열을 할 필요도 없고, 왜 오늘 이런 일이 생겼는지 대서사시를 읊는 것처럼 장대하게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오늘 겪은 일은 아내도 겪은 일이기 때문에, 소중한 식사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

저녁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나는 아내와 함께 티브이를 보며, 책을 읽으며,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이 있어 그렇게 외롭고 힘들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내가 이 회사 다니는 이유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당신 없었으면 진작에 그만뒀을 거야. 알지?” 내가 말했다. “나도 심심해서 못 다녀. 그래서 당신이 이직한다고 하면 내가 놔줘야 하는지 고민이야.” 아내의 진심이 담긴 말이 이어졌다.


나는 말없이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준다. 손가락과 손바닥까지 같은 손이라고 해도 믿겠다. 소파에 앉아 서로의 손을 마주 댄 채, 내일 회사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침착하게 보내자고 서로를 격려하는 우리. 저녁을 먹으며 오늘 회사에서 일어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이렇게 손을 마주 댈 순간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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