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꼴 부부

by 피터팬의 숲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중요한 업무를 앞두고는 산소가 부족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며 마스크를 스스로 벗어버리기도 하지만, 주위를 오가는 동료 직원들의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눈치를 봐가며 퇴근시간을 기다린다. 답답한 하루가 유독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마스크를 하루 8시간 중 온전히 쓰고 있는 시간과 벗고 있는 시간의 비율은 비슷할 것 같다. 갑자기 저 건너편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 편이 아리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집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재택근무자들이 너무나 부러워졌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면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가고, 점심시간도 편하게 가질 수 있으며 출퇴근 시간을 확보해서 삶의 질이 크게 올라간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재택근무를 단 하루 시행한 적이 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회사가 코로나 확진자가 천 명 이상 발생할 때도 아랑곳없이, 직원들을 출퇴근시켰다. 직원은 국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너희 직원들은 국민 건강을 지켜야 하니 희생하라는 것인지.

이런 회사에 두 명의 가족이 동시에 다닌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내부부는 사실,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아야 한다’는 분산투자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회사가 잘 나가면 둘 다 기분이 좋고 희망과 환희에 찰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서로를 향한 애잔한 마음만 커질 뿐이니까 말이다.

애잔한 마음을 가진 나는 오늘도 회사 식당에서 아내와 나란히 앉아 점심을 같이 먹었다. 서로 각자가 속한 부서의 팀에서 오전 시간에 별일 없었냐는 안부를 물으며, 조용히 수저와 젓가락을 번갈아 끼적였다. 둘 다 목소리가 높지 않아 밥을 먹으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서로가 앉은 의자가 처음보다 가까워진다.


멀리서 회사 동료가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아마 ‘사다리꼴’이 생각날 것 같다. 의자가 사선으로 한 점을 향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사다리꼴’ 부부.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같은 목표를 지그시 응시하며 걸어가는 부부라며 나는 아내에게 ‘오늘의 의미부여’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