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아서 오가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은 요즘, 우연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기 그지없다. 아내는 내 옆 자리에 항상 서서 오는데 우리 앞에 앉아있는 사람 둘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은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다리 많이 아프지?”
“괜찮아.” 조용한 어조로 오늘도 담담히 출퇴근의 고단함을 견디는 아내다.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지 못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내 앞자리 사람이 일어나면 난 재빨리 아내를 힘껏 당겨 그 자리에 앉힌다. 그 틈을 이용해 옆에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난 누구보다도 세게 아내를 당긴다. 누가 봐도 남편인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그날도 서서 출근하는 나와 아내 사이에 몇 사람이 서 있었던 아침이었다.
인덕원역에서 앞사람이 일어나서 아내를 바라보니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고, 팔을 뻗어 당기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앉게 되었다. 앉아 있다 보니 사당역에 금세 도착했다. 아직 15분 정도가 남아 아내에게 눈짓해 내 앞에 서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내의 손목을 끌어 내 자리에 앉히고, 나는 그 앞에 섰다.
“힘들지? 남은 구간은 내가 서 있을게” 내가 말했다.
“괜찮은데.” 아내가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그날은 나와 아내 중 한 번 앉은 사람이 자리를 반반씩 나눠서 앉아 온 최초의 날이었다. 내가 아내를 많이 생각하긴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서 자리를 아내에게 양보하던, 내가 앉던, 영광스레 자리를 얻은 사람이 계속 앉아서 오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우리는 한 자리에 반반씩 앉는 일이 많아졌다.
같은 직장에서 고난의 하루를 보내거나, 보내야 했기에, 전우애와 가족애로 뭉친 우리는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했다.
어떤 날은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 앉아서 퇴근하는데, 아내는 자리가 없어서 25분쯤 서 있었다. 나는 아내를 끌어다 자리에 앉게 했고, 다음 정류장에서 아내가 앉은자리 옆의 학생이 내려, 나는 아내 옆 자리에 나란히 앉을 수 있게 됐다.
“나한테 자리양보를 하니까, 좋은 일이 생기잖아” 아내가 귀엽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에 나란히 앉아서 가는 일이 많아졌다. 역시 착한 일은 배우자에게 가장 많이 해야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