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욕세권’ 아파트라는 꼬리(?)표
작년 추석을 앞두고 매수한 아파트의 전세 계약을 올해 1월 말에 하면서, 그날 세입자가 될 분, 그리고 부동산 중개소장님과 함께 매수한 집의 상태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마침 매도인도 다른 거처가 있었는지 짐을 다 빼놓은 상태여서 가구와 집기 등이 싹 빠진 집을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2018년 하반기에 준공된 신축 아파트라 상태는 역시 깔끔했습니다. 1군 건설사 브랜드에 구조도 좋고 24평임에도 ‘드레스룸’과 ‘펜트리’까지 갖춘 데다가 4베이 형태의 판상형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매수했는데 짐이 빠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습니다. 거실 창에서 들어오는 햇볕과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오묘한 기분을 연출했습니다. 이 지역에 직장이 있었다면 여기서 실거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비 세입자’ 분이 다급하게 불렀습니다. 못이 박힌 자국이 여러 군데 있다며 저에게 좀 보라고 손짓했습니다. 아무래도 살면서 자잘한 하자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미리 이러한 ‘흔적’이 있음을 알리는 예비 세입자분이 상당한 고수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못 몇 군데 박힌 것은 대수롭지 않아요. 괜찮습니다’라며 무심히 말하려던 찰나, 보일러실로 오라는 중개소 소장님의 다급하면서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보일러실에 갔더니 놀라운 장면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천장에서 바닥까지 실처럼 가느다란 ‘크랙’이 나 있던 것이었습니다. ‘하얀 하늘에 검은색 번개가 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흰색 바탕의 보일러실에 검은색 크랙이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소 소장님은 저에게 ‘셀프 보수’를 제안했습니다. 매도인은 나 몰라라 할 것 같으니, 잔금 전에 보수를 좀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처음 매수할 때 보이지 않았던 결점이었는데, 이제야 발견한 제 과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저와 아내는 다시 문제의 보일러실에서 ‘보수용 퍼티’와 ‘해나’를 갖추고, 작은 스툴 위에 서서 보수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집에서도 해보지 않았던 작업인데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며 퍼티를 바르고 해나질을 하는 우리의 어리바리한 모습들이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두 시간 정도 걸린 ‘첫 보수 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이후 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기쁜 마음에 택시 기사님께 모른 척 질문을 했습니다.
“기사님, 저기 저 아파트 어때요? 소규모 택지지구로 신축이라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저기? 저긴 이미 입주가 다 마무리됐어, 비싸기도 하고, 저기가 예전엔 다 공장지대고 논이었는데 말이야. 투기꾼들이 다 올려놨지.”
“기사님. 저기 아직 입주 안 끝났어요. 분양해야 할 블록도 1군데 남았고, 초등학교도 개교 전이고, 중고등학교도 기부채납 부지로 확정돼서 언젠가는 들어올 것 같고요. 상권도 이제 막 형성되고 있던데요?”
“아니야!! 저기 다 이미 마무리됐어. 이미 다 끝났다고 그러네, 허 거 참, 크흠! 흠!!”
갑자기 크게 고함치듯 말하는 택시기사님의 목소리에 저와 아내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마치 아픈 구석을 콕콕 찌르는 시누이의 가시가 돋친 말을 외면하듯, 택시기사님은 거칠게 핸들링을 이어가며 다른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까 거기 말고, 여기가 이번에 새로 지어지는 택지지구야. 여기는 이제 시작이지.”
아까와는 다르게 화색이 도는 얼굴을 한 기사님의 모습에 저는 아내에게 싱긋 웃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오늘 있었던 택시기사님의 행동을 분석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투자한 지역은 현지인 ‘욕세권(욕을 많이 먹는 지역 또는 아파트)’으로 원래 유명하기 때문에, 그 지역이 발전하고 비싸져서 화가 난 것 같다는 추측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지어진 택지지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니 청약을 기대하는 심리로 택시기사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부동산을 다루는 유튜브와 도서 등에서 현지인 욕세권 아파트는 검증된 투자처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 택시기사님을 통해 직접 체험하고 나니 뭔가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택시기사님에 빙의되어 심리 분석까지 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정말 ‘투기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전의 ‘첫 보수 작업’의 어리바리함과 묘하게 ‘크로스오버’ 되면서 살짝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저녁이었습니다.
잘 투자한 것 같다는 안도감 또는 ‘희망회로’가 우리의 저녁 밥상 숟가락을 가볍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