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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승 Mar 22. 2022

나는 죽지 않으리

음악×문예 08 _네루다,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

음악×문예 08

네루다(Pablo Neruda)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



바다를 보았다. 옥빛으로 점점 빛나는 바다. 남쪽 섬에서 보는 바다는 어두워질수록 빛난다. 물빛이 건너는, 먼 하늘 끝에서 바다는 밀려온다. 하늘 끝이 바다의 시작인 그곳, 구름은 하늘과 바다를 잇는다. 바람은 쉴 새 없이 오가며 하늘과 바다 사이에 세상을 만든다. 바닷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고 나는 비로소 사람이 된다.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고깃배 한 척이 천천히 움직인다. 배는 출렁이는 바다 위에 길을 만든다. 바닷길은 배를 밀어놓고 서서히 퍼져 나간다. 퍼져 나간 길은 이내 물밑으로 사라진다. 길이 사라진 바다는 다시 짙푸른 소리로 운다. 바람은 그 소리에 맞춰 흔들린다. 흔들림이 밀려와 섬을 만든다. 섬에서 나는 바다를 찾는다.



파도 소리가 열어놓는 하늘 밖 하늘


그러나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제주 바다 1」)고 제주 시인 문충성은 단언한다. 같은 시에서 “파도 소리가 열어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했으나 눈에 보이는 하늘조차 아득하기만 하다. 그 아득한 ‘하늘 너머의 하늘’은 오롯이 제주 사람들의 하늘이어서 아무리 제주에 자주 가고, 오래 머물러도 섬 밖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그저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은 하늘일 뿐일 테니.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제주에는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제주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하늘. 그 하늘은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 오로지 그곳에서 자라온 몸으로만 볼 수 있는 하늘. 그 ‘하늘 밖 하늘’ 한곳에 4·3과 그 희생자들이 있다. 해방 이후 지난 세기 내내 희생자들은 하늘 밖 하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그 사실을 가슴에도 담지 못하고 하늘 밖 하늘에 숨겨두고 지내왔다.


광주의 ‘폭도’가 ‘민주 영령’으로 부활할 때에도 제주 하늘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4·3으로 숨진 이들은 21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희생자로 기록된다. 가해자도 없고 배상도 없고 희생만 있다. 국가권력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건. 그 ‘어쩔 수 없음’에 2만 5000여 제주 사람이 죽고 사라졌다.


4·3은 세계에 유래 없는 민간인 집단 학살, 제노사이드이다. 나라, 민족, 인종, 종교 따위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집단 학살을 일컫는 말인 제노사이드. 하지만 소위 단일민족임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처럼 같은 민족을 학살한 경우는 거의 없다. 말하자면, 유태인이 유태인을 집단 학살한 것과 같다. 그때 제주도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변방이고 나머지로 여겨졌던 것인가.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에서 ‘희생자’일 뿐, 가해자는 없고 ‘어쩔 수 없는’ 집행자만 있는 사건. ‘우리’에 포함되지 못한 희생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제주 하늘 밖 하늘에 머물고 있다.


‘평화’의 섬, 제주. ‘힐링’의 섬, 제주.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물론, 하늘 밖 하늘을 외면하면 제주 하늘은 차분하고 또 아름답다. 하지만 차분하다고, 아름답다고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모두’의 하늘이 되는, 하늘과 하늘의 경계가 지워지는 그때 제주 하늘은 폭풍우 속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다. 제주는 아직 평화를 모른다. 늘 기원이고 소망이다. 평화는 ‘목적지가 아니라 그 길 자체’라고들 하지만 제주는 아무도 외면하지 않는, 무엇도 배제하지 않는 평화를 갈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는 평화의 섬이다.


나는 죽지 않으리, 나는 지금 떠나네,

터질 듯한 화산들이 가득한 오늘,

군중을 향해, 삶을 향해.

갱스터들이 ‘서구 문화’를

한 아름 품고 거들먹거리는 오늘,

여기, 두 발로 굳게 서리라

스페인에서 살인을 자행하는 손들,

아테네에서 흔들리는 교수대,

칠레를 지배하는 치욕,

나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리라.

나 여기에 머물리라.

또다시 나를 기다릴, 반짝이는 손들이

나의 문을 두드릴

말[言]과 민중과 길과 더불어.

네루다, 「나는 살리라(I Am Going to Live)* 전문 

*Pablo Neruda, Canto General, translated by Jack Smitt, Univ. of Califonia, 1993.



고통 없는 삶은 얼마나 아픈가


네루다의 서사시집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는 오랜 시간 동안 네루다처럼 칠레에서 쫓겨나 온 세상을 바람처럼 떠다녔다. 그러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로 잘 알려진 그리스의 작곡가, 테오도라키스를 만나 아름다운 선율과 긴장된 리듬을 얻는다. 칠레와 그리스의 기세등등했던 독재 권력은 ‘모두’의 노래를 억누르지 못하고 오히려 사그라져갔다. 노래는 영원하고 권력은 너무도 짧았다. 그 와중에 죽임 당한 사람들이 노래로 다시 살아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노래에 싸여 모두가 된다. 죽음과 죽음의 하나 됨. 결국, 모두를 살리는 노래.


제주 먼 바다에서 태풍이 몰려온다. 포구에 숨어든 배들은 서로 어깨를 겯고 흔들림을 견딘다. 나무와 꽃들은 흔들릴 대로 흔들리며 바람을 탄다.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흔들리는 거리를 할퀴듯 비추고 간다. 비도 흔들리며 내린다. 위에서도 내리고 옆으로도 파고든다. 비가 유리창을 심하게 두드린다. 바람은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바람이 창을 흔들며 묻는다, 고통 없는 삶은 얼마나 아프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바람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어둠을 건너 한라산으로 사라진다. 살아 있음으로 아픈 사람들은 태풍 속에서야 겨우 그리운 것을 그리워할 수 있다. 바람이 통째로 세상을 걷어가도 남는 고통뿐인 삶들이. 큰 바람이 고통을 흔드는 밤. 창을 두드리는 빗줄기 너머,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둘 스쳐간다. 하늘 밖 하늘 사람들, 불꽃이 된 사람들, 창살 속 햇살이 된 사람들, 떨어져 바위가 된 사람들, 물속에 땅속에 나무 속에 잠든 사람들… 그들 모두 바람이 되어 잠든 창을 흔들며 읊조린다, 죽음은 죽음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아파도 끝내 살아남으라고.


내 무덤 앞에 선 당신, 제발 울지 말아요

거기엔 내가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온 세상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어요

가을에는 햇살이 되어 곡식을 키우고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어 내려요

아침엔 작은 새 되어 당신을 깨울게요

밤이면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

내 무덤 앞에 선 당신, 이젠 눈물을 거두어요

거기엔 내가 없어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온 세상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어요

아라이 (新井) , 〈온 세상의 바람이 되어(千の風になって) 전문 


#제주 #바다 #하늘 #죽음 #삶 #바람 



https://youtu.be/g0SgthJVbk4

https://youtu.be/egkNL81Fv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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