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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Sep 01. 2019

춤추는 사람, 읽는 사람, 일하는 사람(2)

매직카펫 매거진 Vol.4 전다원 님 (2)

전다원 님의 인터뷰 (1)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17



#새로운 경험에 열려있기, 독서와 우리 동네


이렇게 본능적으로 취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독서도 많이 하고 있죠. 본능적인 몰입과 이성적인 독서의 영역은 굉장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저는 참 좋아 보였어요.

1년에 52권 읽는다는 올해 목표는 잘 진행되고 있어요?


아직 25권 밖에 못 읽었어요. 그래도 올해는 꼭 52권을 목표로 해야죠. 사실 작년에도 했는데 그땐 한 해 통틀어서 22권 읽었거든요. 작년에는 못했으니까 올해는 꼭 하고 싶어요.


많이 읽는 게 중요할 수도 있고 깊이 있게 읽는 게 중요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일주일에 한 권이라고 정한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어요.


수치로 정확히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목표 달성의 그런 희열은 수치로 나오는 거니까요.


학생 때나 회사 업무에서도 그런 면이 있어요?


제가 1등을 하려고 하는 건 없는데 제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선 좀 그런 것 같아요. 공부할 때도 80% 정도만 하면 만족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쌓아온 게 진짜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서요.


다른 진짜 책 많이 읽으시는 분들이 보면 이 숫자가 아무렇지 않은 숫자겠지만 저는 진짜 안 읽던 사람이고 그나마 작년에 읽기 시작해서. 사람들한테 많이 말하고 다니는 것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하고 다니는 거죠.


근데 굳이 책이어야 할 이유가 있어요? 쌓고 싶은 게 어떤 거예요?


뭘 쌓고 싶다기보다는 쌓아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싶은 거죠. 하하하.


읽은 만큼 만족감은 있었나요?


네. 다른 세상이잖아요. 책 속의 다른 세상들. 저는 생활이 단순하거든요. 한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고 만나는 사람들도 제한적이고 일 자체도 새로운 사람이 만나는 게 아니라서 새로운 사람들이나 새로운 걸 접하는 거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걸 계속하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풀고 있네요. 제가 또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건 트레바리(독서 커뮤니티 기반 스타트업), 읽는 사람(다원님과 주변 사람들이 함께 만든 독서 모임)도 그렇고 다 사람들이랑 하시잖아요.


혼자 하면 못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도심 한가운데서도 에스닉한 다원님의 옷차림은 왠지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그럼 문화 비축기지(복합문화공간이자 커뮤니티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쳤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요?


그건 좀 다른 건데 '만약 내가 춤으로 밥을 먹고 산다면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서 한 번 시도해본 거였어요.


어땠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이들한테 받는 에너지가 진짜 좋았어요. 그 전에도 한 번 가르쳐본 적이 있는데 그땐 너무 준비가 안되어서 ‘망했어!' 이런 느낌이었는데 아이들하고는 동작을 똑같이 한다기보다 함께 어우러지는 쪽으로 흐름이 가면서 같이 뛰노는 것만으로도 좋아해 줬어요.


그때 애들 나이가 어떻게 되었나요?


대여섯 살 정도. 계속 뛰어다녔어요.


그것도 자원활동의 일부였어요?


네. 문화 비축기지가 집 근처라 몇 번 갔는데 공간이 너무 좋았어요. '서울에 이런 데가?’하는 느낌이거든요. 문화행사도 많이 해서 그 공원의 자원활동가를 뽑는다는 포스터를 보고 신청했어요.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게 없어요. 완전히 오픈된 활동이라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어요.


그럼 다원님은 애초에 '난 이런 걸 한 번 해보고 싶어'라고 말하고 들어간 거예요?


아뇨. 거기 가면 처음 6주간 수업을 받아요. 그 후에 뭐하고 싶은지 계속 물어봐요. 커리큘럼이 있는 참여가 아니라 커리큘럼 자체를 만들 수 있게 시민들의 참여를 도와줘요.


판을 만들어주는 거군요.


네. 그래서 거기 있으면서 내가 엄청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 우리 이제 뭔가를 해야 해, 뭐할까 하다가 모인 분들 중에 그래도 제가 특징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걸(아프리칸 댄스 가르치기) 하게 된 거죠.


그리고 만족한 결과였고요?


네.


그것도 신기해요. 동네에 그런 문화공간이 있다고 다들 그런 걸 신청하진 않아요. 그리고 예전에 저한테 망원동 구경시켜줬잖아요. 같이 마포도서관도 가고. 그때도 말씀하셨죠. '저는 우리 동네가 너무 좋아요.'라고. 동네 자랑 좀 해주세요.


정말요? 하하. 전 고향은 부산이고 고등학교 때까지만 살아서 집, 학교밖에 안 다녔다 보니 오히려 부산을 잘 몰라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홍대에 살고픈 로망이 있었어요. 음악이나 예술을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처음 홍대에 살았을 때 길거리 아무데서나 버스킹을 들을 수 있는 게 종말 좋았어요. 나는 집에 가는 길인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연주를 해요. 어떻게 보면 그런 환경에 있는 게 너무 운이 좋은 거죠.


망원동 쪽으로 이사 오면서는 가족적인 분위기, 로컬의 분위기가 살아있어서 좋고 성미산 학교도 있고. 사실 전 그곳은 잘 모르지만 우리 동네끼리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문화가 있어서 마음이 좀 편해요.


문화행사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무료공연이나 마포아트센터 통해서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공연 커리큘럼처럼 마포구가 지원해주는 게 많아서 '정말 마포구민은 축복받았다' 이런 느낌이에요. 저한테는 딱 맞는 것 같아요.


예전 했다고 말했던 텃밭 일구는 모임도 동네모임이고 아프리칸 댄스 연습실도 동네에 있고. 둘 다 동네 사람들이 많아요?


텃밭은 동네 사람들 대상으로 모은 거라 당연히 동네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프리칸 댄스는 달라요. 위치가 저희 동네일 뿐이지 경기도에서도 오시고 그 춤 자체만 보고 오는 거라 좀 다르죠.


페이스북의 망원동 커뮤니티 통해서 가구 교환도 했었다고 했죠? 그러면서 동네 친구도 좀 사귀었어요?


텃밭 하면서 동네 친구가 생기긴 했는데 제가 다른 것 때문에 바빠서 많이 만나지는 못했어요. 저는 서울에 연고지도 없고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어서 친구가 없거든요, 진짜로. 원래도 단순한 삶을 사는데 친구도 없으니까 동네 친구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그런 텃밭 모임을 나간 것도 있었어요.


막 엄청 친한 친구를 사귀진 못해지만 동네에서 걷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요. 문화 비축기지 자원활동가 중에도 동네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지나가다가 인사를 해요. 그럴 때 내가 동네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사실 말 많이 하고 진짜 친하고 시시콜콜 아는 건 아니지만 길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그런 게 좋아요.


헐거운 네트워크가 주는 또 다른 안정감이 있는 것 같아요. 단골가게도 있어요?


동네는 좋아하는데 외식을 많이 안 해서… 맨날 가는 집 앞 슈퍼나 집 앞 고기 가게도 있는데 비싸서 몇 번 못 갔지만 인사는 열심히 해요.


도서관도 자주 다니고 있어요?


네. 지난 금요일에 퇴근하고 1시간 정도 시간도 되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도서관 벤치에 앉아서 김밥 사 먹으면서 시간을 때웠어요.


다원님이 속한 아프리칸 댄스 그룹 '포니케'에서는 이렇게 야외 행사에 참여하여 공연을 하곤 한다. 최근엔 신촌과 인사동에서도 했었다고.


#춤추는 나, 읽는 나, 일하는 나


얼마 전에 어느 크리에이터의 강연을 들었어요. 유튜버로서 여러 가지 숫자, 성적에 쫓기다 보니 거기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유튜버, 작가, 음악가, 자연인으로 분리했다고 하더라고요.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어요. 여러 가지 ‘나'가 있고 그중 하나의 결과가 나라는 인간 전체의 가치 혹은 성공이나 실패일 수는 없다고.


다원님은 어때요? 자신을 여러 가지로 분리할 수 있나요?  


저는 그 부분에 굉장히 공감해요. 처음에 키워드 이야기할 때 춤추는 사람 전다원, 읽는 사람 전다원, 일하는 사람 전다원을 뽑았는데 저는 제가 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죠.  


그 각각의 전다원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나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엄청 힘이 된다기보다 그 끝이 있다는 걸 아는 거?


끝을 안다는 건 뭐예요?


일하는 내가 평생의 내가 아니니까. '이것도 끝날 거야. 힘들면 이거 말고 딴 게 있잖아' 이런 거죠. 춤추는 거나 노는 거에 몰입해있으면 ‘정신 차려. 넌 원래 돈 벌어야 하는 애야' 하고 생각하죠. 내 안에서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확실해진 게 몇 년 안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일하는 시간, 춤추는 시간, 읽는 시간, 이렇게 시간이랑 실제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자아랑 구별이 똑같이 되니까 명확해졌는데 그전에는 '이건 그냥 취미야’하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과정이었던 것 같고. 최근에 이렇게 정립이 되니까 구별이 확실해진 것 같아요.


그럼 아프리칸 댄스는 이제 취미가 아니라 나의 표현이라고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맞아요.


저는 취미라는 말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하기야 취미보다 좀 더 나아간 느낌이니까요. 취미에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20대 때는 많이 찾아보잖아요. 이것저것 나랑 맞는 취미는 뭘까 하면서. 나중에는 더 재미있는 걸 찾아서 거기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아프리칸 댄스는 다른 것들에 비해 확실히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고 재미를 더 많이 느껴서 이게 나랑 맞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직장이 10년 차에 비로소 정착한 거잖아요. 그럼 이전까지는 어떤 걸 해봤어요?


줌바나 스포츠댄스 전에는 단편적인 것들은 있었지만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만큼 길게 한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 하나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이런 하나가 생기고 나니까 달라진 점이 있어요?


안정감도 많이 들고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쓰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아요. 최근 1년이 그런 것 같아요.


스쿼트하듯이 낮은 자세의 동작이 많다는 아프리칸 댄스


나의 또 다른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뭔가를 발견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게 맞는 것도 같아요. 그럼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때요?


전 좋아요.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것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근데 거기서 더 나아가고픈 생각은 안 들어요.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거나 지금 인터뷰처럼 더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기엔 내 에너지를 거기에 쓰진 않는 것 같아요.


아마 그건 다원님에게 안정감을 주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죠.  


맞아요. 얼마 전에 친구랑 이야기하는데 그 친구는 그런 단편적인 만남이 피곤하다고 하더라고요.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 알게 되는 건 좋지만 너무 많아지면 깊은 관계가 없다는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단편적인 느낌으로 충족이 되는 것 같아요.


다원님의 호기심은 다 충족이 되는 거군요. 물론 인간이란 계속 변하는 존재니까 지금 이대로의 상태에 만족하는 게 계속될 수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트레바리나 읽는 사람 같은 걸 하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추는 것 같아요.


어땠어요? 질문받아보니 어떤 느낌이에요?


저는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진짜로. 인스타에 올릴 거예요. 인터뷰당했다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인터뷰를 한 적이 학교 다닐 때 유학생으로서 했던 인터뷰, 문화 비축 기지에서 이벤트 하고 피드백 인터뷰처럼 또 한 번. 인터뷰하면서 저도 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나 스스로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상대방이 물어봐주니까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오, 너무 좋아요. 이거 써놓고 다음에 다른 인터뷰이 섭외할 때 써먹어야겠어요.


좋죠. 요즘에 누가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잖아요. 다 살기 바쁘고 내 것 챙기기 바쁜데 누가 이렇게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나요.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관심이잖아요. 진짜 깊이 알고 싶어서 하는 관심이니까 쉽지 않잖아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 들어요. 감사해요.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조건 중 하나는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것이다. 알아서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도 하고 집을 치우고 내 감정도 잘 돌보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특히나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나의 방법을 찾기도 해야 하고 자신을 잘 들여다보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다원님은 내게 건강한 어른이다.


인터뷰를 했던 날, 기분이 참 좋았다. 질문하고 대답한 시간들이 만족스러웠고 인터뷰 후 유난히 좋았던 햇살과 초록빛 나무를 배경으로 영상도 찍으면서 우리는 많이 웃기도 했다. 이 인터뷰에 다원님의 그 밝음과 건강함이 잘 담겨서 읽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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