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카펫 매거진 Vol 5. 서수영 님
취미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시간과 애정과 에너지를 쏟는
저마다의 무언가를 '매직카펫'이라 부르고
그 매직카펫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매직카펫 매거진'!
이번에 만난 수영님은 자연과학 전공자도 아닌데 개기일식 여행을 비롯해서 서호주 우주생물학 탐사여행,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도 다녀왔단다. 이렇게 스케일이 큰 여행을 다니는 한편 동네에 앉아 드로잉을 하고 텃밭을 가꾸는 작은 취미들을 잔뜩 가진 '취미부자'이기도 했다.
눈이 없어지도록 활짝 웃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너무 산만하죠?'라고 취미의 변천사를 말해주던 수영님은 '그래도 다 하나로 이어지는 결이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이번 매직카펫 매거진은 한 사람의 그 거대하고도 소소한 취미의 역사를 담고 있다. 개기일식(Part1)과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Part2), 그리고 드로잉과 주말농장(Part3)은 이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가 된다.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직장 다니고 있는 서수영입니다.
직장 다닌 지 얼마나 되셨나요?
올해 햇수로 19년, 내년에 20년 차. 한 번도 안 쉬었어요. 딱 한 번 이직하면서 2주 쉬긴 했지만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이라 쉰다기보다 상 치르고 난 다음의 여러 가지 일을 했죠.
이번에 인터뷰를 요청한 계기이기도 한데요. 수영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시는 일식 여행 말이에요. 익히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내 페친 중에 있다니! 신기했어요. 어떻게 보게 된 거예요? 두 번 보신 거죠?
네. 두 번 봤고 올해 7월, 2017년 8월에 미국에서 봤어요.
2016년 12월쯤에 페친으로만 알고 계시던 선생님이 계셨어요.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주변에 서로 아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눈으로 안 보이는 딥스카이를 찍는 천체 사진가이자 아마추어 천문가로, 일식을 7번 정도 보신 이클립스 체이서(eclipse chaser, 일식을 보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세요.
제가 그해에 아프리카 여행을 가서 남긴 영상을 보시고 아프리카 여행 문의를 주셔서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다가 트럭, 캠핑, 별보기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분이 내년에 일식 보러 가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일식을 보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캠핑가로 여행하는 일정인데 자리가 하나 남는다는 거예요.
저는 일식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캠핑카로 돈다기에 1초도 생각 안 하고 '예'하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다음 해 1월에 서울역에서 참가자가 처음 다 같이 만났어요.
아직 반년 이상 남은 여행인데 일찍 모였네요?
일식은 몇 백 년 후까지 시간, 장소가 다 정해져 있다 보니까 비행기 같은 건 이미 1년 전부터 난리가 나있어요. 보는 장소도 중요해요. 토털 이클립스(개기일식)가 지나가는 자리가 있거든요. 날씨를 치열하게 계산하고 정보를 주고받아요.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면 못 보잖아요.
숙소도 서로 다른 곳에 대여섯 곳을 동시에 예약해요. 도착해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숙소로 빠르게 옮기려고. 어디 날씨가 좋은지 미리 도착해서 상황을 보는 거예요. 그래 봤자 50킬로미터 내외인데 그래도 구름이라는 건 그 범위 안에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여러 곳을 잡아놓고 판단하는 거죠. 저는 모르니까 따라다니는 정도였고요.
* 일식 : 지구에서 보았을 때 태양이 달에 가리는 현상
* 개기일식(total solar eclipse) :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일식, 태양의 일부분만 가릴 때는 부분일식이라 함. 일식은 매년 2~5회 발생하나 개기일식은 2회를 넘지 않음.
-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일식의 과정을 보고 싶다면 이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그럼 토털 이클립스 경로가 정해져 있으니까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겠네요?
사람들이 몰려있죠. 일식은 그냥 보는 사람, 촬영하는 사람 이렇게 나뉘어요. 촬영하는 분들은 망원경으로 촬영하니까 전날 장비를 세팅해서 해를 찍어보면서 잘 찍히는지, 렌즈와 각도 등등을 맞춰봐요. 그리고 일식 동안 초단위로 사진을 찍죠.
제가 본 자리에서는 일식이 길어봐야 3분이었어요. 위치에 따라서는 최장 7분까지도 볼 수 있는데 보통은 3분 미만 2분 정도. 이번에 다녀온 칠레에선 2분 몇 초였어요.
처음 일식 보고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점점 어두워지다가 해와 달이 완전히 합쳐지면 갑자기 별이 빠바바박 보여요. 대낮에요. 그리고 갑자기 새들이 날아올라요. 이상한 현상이니까 새들도 당황하는 거죠. 찬바람이 확 불면서 한기가 느껴져요. 정말 신기해요.
맨눈으로 보면 눈이 상하기 때문에 필름을 대고 보고 있다가 다이아몬드 컨택이 생기면 이때 딱 필름을 빼요. 그럼 다이아몬드 링을 딱 보거든요. 홍염도 보이고.
토털 이클립스 상태에선 다들 조용해져요. 그러다 달이 태양을 지나쳐 나올 때 또 소리 막 질러요. 나올 때도 다이아몬드 링이 보여요. 그리고 갑자기 확 밝아져요. 태양빛이 정말 대단한 거죠.
참고영상 : 2017년 일식 여행 당시 수영 님의 동행분이 찍었던 영상으로 일식을 보는 동안 사람들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다.
* 다이아몬드 링 :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 순간의 직전, 직후에 햇빛이 구슬처럼 빛나면서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보이는 현상(출처 및 참고 : 위키피디아)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그 눈물의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처음 보고 나서 너무 당황해서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우주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구나. '네가 있는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게' 하면서 나의 힘듦을 대자연이 살짝 만져주는 느낌이었어요.
일식이 토털 이클립스가 되는 이유는 실제로는 해가 달보다 훨씬 크지만 우리 눈으로 보는 해와 달의 크기가 같기 때문이에요. 훨씬 옛날에는 달이 더 컸고 더 먼 미래에는 달이 더 작아져요. 달이 점점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토털 이클립스는 안 되는 거죠.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점에 해와 달의 크기가 같아서 토털 이클립스를 볼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이게 너무 로맨틱해 보였어요. 물론 이 시기라는 게 몇 천 년쯤 되는 긴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제일 좋았던 건 뭐였어요?
가장 좋았던 건 갑자기 별들이 나타난 거였어요. 제가 그때 개인적으로나 일적인 면에서 좀 다운되어 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낮에 별을 보이는 거예요. 별이 낮에도 떠있는 게 당연한 건데 그 생각을 못했던 거죠.
내가 잘하는 게 없는 것 같고 잘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내 고유의 것, 핵심은 변하지 않고 계속 있어. 지금 태양빛이 너무 강해서 안 보이는 것뿐이었어. 낮에도 하늘을 보면서 저 자리에 뭐가 있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울증을 겪다가 약간 나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침이 있던 때였는데 그걸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고요. 맛있는 거, 좋은 거 보면 제일 소중한 사람이 생각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누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같이 가신 분들이 망원경도 많이 가져오셔서 여행 동안 계속 별을 봤어요. 그 여행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다음 토털 이클립스가 언제냐고 물어봤죠. 2019년 칠레라는 거예요. 이게 올림픽 개최지처럼 날짜도 장소도 내가 선택할 수 없어요. 이 일식 여행의 묘미가 무조건 그 날짜에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에요.
수영님의 장기휴가는 우주가 정해주네요.
그렇죠. 내년 12월 14일에 파타고니아에서 일식이 있어요. 일식을 보고 트레킹을 하면 딱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죠. 이때는 무조건 쉬어야 하는 거예요.
두 번째 일식은 어땠어요?
미국에 일식 보러 갔을 때는 멋 모르고 가서 잘 몰랐지만 이번에 칠레에서는 공항에 딱 내리니 일식 보러 온 사람들은 딱 알겠더라고요. 공항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비행기 값도 엄청 올랐고 렌터카도 이미 몇 달 전에 솔드아웃.
산티아고에서 데이투어 하는데 10명 중 9명이 일식 보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이야기 꽃이 피었죠. 미국에서 할 때 봤어? 중국에서 할 때 봤어? 이러면서 서로 기념 티셔츠를 까기 시작해요.
한 번 보면 끊을 수가 없나 봐요.
한 번 보면 웬만하면 체이서가 되죠. 그 충격과 감동을 잊을 수 없으니까요.
처음 일식 봤을 때는 뭣도 모르고 사진 찍고 두리번거리다가 다이아몬드 컨택을 못 봤어요. 그래서 이번엔 절대 사진을 찍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어요. 이게 완전히 합쳐지는 건 2분이고 달이 해를 서서히 가리는 게 3~4시간 정도 걸려요.
사람들도 이게 처음엔 신기하다가 길어지니까 딴짓을 해요. 그러다 점점 가까워지면 와~ 하다가 다시 나가면 또 와~ 하고. 달이 해를 빠져나갈 때도 1시간 걸리니까 그냥 다 집에 가요. 그런 광경도 재미있었어요.
이클립스 체이서들만의 문화네요. 또 어떤 게 있어요?
일식 딱 끝나자마자 사진 촬영하시는 분들은 다 같이 모여서 네가 잘 찍었네, 내가 잘 찍었네 하면서 서로 비교해봐요. 확대해 봐, 여기 습기 찬 거 같은데, 연속사진 노출이 안 맞았네, 그래요. 찍는 중간중간에도 난리가 나요. 고도가 맞네, 안 맞네 하면서요. 각자 일식을 즐기는 방식이 있죠. 이 분들은 일식의 감동을 넘어 기록에 집중하시는 거고요.
첫 일식 여행 때 함께 가기로 했던 분이 사정이 생겨 빠지면서 합류하신 분이 드로잉 작가 이미영 님이세요. 그분은 진행되는 기간 동안 계속 그림을 그리시더라고요. 이것도 참 신기한 게 첫 일식 여행을 가기 전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재료도 알아보고 챙겨갔는데 여행을 함께 하신 분이 드로잉 작가였던 거죠.
드로잉을 그때 시작하신 거군요?
네. 두 번째 일식 여행을 마음먹게 되면서 이미영 님과 함께 다른 분들과 팀을 꾸렸어요. 남미 여행을 하시다가 합류하시는 분, 일식 보고 남미 여행을 하실 분 이렇게 일정이 달라서 일식 전날에 숙소에서 모였어요.
이번 일식은 바닷가였어요. 근데 바닷가는 수증기가 많아서 구름이 많아요. 일부 사람들은 꼭 봐야겠다면서 30-40킬로미터 떨어진 산속 가서 보시기도 했어요. 저희는 모험을 걸었죠. 정말 다행히 구름이 없었어요. 이런 일식이 정말 귀하대요.
두 번째로 본 일식은 어땠나요?
첫 번째보다 눈물이 더 많이 났어요. 지금도 설명이 잘 안 돼요. 이번에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니까 과정을 놓치지 않았고 주변도 볼 수 있었어요. 해가 사라지면서 별이 나타나면 '저건 금성, 저건 수성’ 하면서 보게 됐죠. 바닷가 앞이니까 일반적인 노을이랑은 또 달랐어요. 어두운 곳에 인공조명을 켜놓은 듯한 느낌.
해가 가려지는 정도에 따라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것도 더 잘 느꼈고요. 토털 이클립스 전에 갑자기 바람이 확 불었어요.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니까. 새들이 갑자기 날아오르는데 정신없이 나는 게 아니라 군무를 해요. 방향을 못 잡고 여기로 우르르 갔다가 저기로 우르르 가고. 개들도 난리가 나요. 백사장에 널브러져 있던 개들이 토털 이클립스 직전에 바람이 불면 놀라서 뛰어다녀요.
생명체들이 태양이 사라졌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았죠. 완벽한 연극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었어요. 같이 보는 재미도 있어요. 다 같이 소리 지르고.
서수영 님의 인터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Part2. 39억년 전 땅으로의 여행이 가르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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