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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Sep 11. 2019

Part2. 39억년 전 땅으로의 여행이 가르쳐준 것

매직카펫 매거진 Vol 5. 서수영 님

서수영 님의 인터뷰는

[Part1. 낮에도 떠 있는 별, 개기일식을 보다]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20


[Part2. 39억년 전 땅으로의 여행이 가르쳐준 것]


여행의 감동으로부터 삶의 이정표를 얻었다는 표현을 쓰신 걸 봤어요. 어떤 이정표였나요??


제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건 자연을 보러가는 건데 가장 큰 이정표가 되고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2013년의 서호주 여행이었어요. 이름도 특이한데 서호주 우주생물학 탐사여행.  


우주생물학 탐사여행이요?


우주생물학은 '우주에도 생명체가 살까?'를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하지만 우주에 가볼 수 없으니까 화성의 대기상황이 지구의 태초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지, 혹은 그럼 태초의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길래 생명이 생겨났는지를 연구하다보면 다른 행성에는 생명이 살 수 있을지를 연구할 수 있다는 거에요.  


태초의 지구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 호주 서쪽의 퍼스(Perth)보다 조금 올라간 카리지니(Karijini) 같은 곳이에요. 특히 카리지니는 39억년 전 땅이 솟아올라와 있어요. 지구 나이가 45억년 정도 되니까 가장 오래된 지각이죠. 그곳 탐사를 가는 여행을 같이 가게 된 거에요.


그때 같이 간 분이 이정모 관장님, 이지유 선생님,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의 백두성 학예사님, 문경수 대장, 출판사 2분 등등 해서 같이 갔어요.


참고영상 : 서호주 우주생물학 탐사여행을 다녀와서 수영님이 만든 영상
첫 서호주 여행 이후에도 수영님은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고. 이 사진은 호주 사막 투어 때의 모습.


그 여행은 어떻게 가게 되었나요?


그전엔 자연이라고 하면 리조트를 가거나 동남아에 바다를 보러가는 것이었는데 그게 성에 안 차는 거에요. 그때 한창 아버지가 병에 걸리시고 삶이 무료해서 좀더 넓은 세상, 광활한 자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캐나다, 호주를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마침 '테드X’ 활동을 하면서 문경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오지탐험가라고 명함을 주셔서 물어보니까 내년에 서호주 탐사 가려고 팀을 꾸리고 있다고 해서 거기에 들어갔어요.  


저 말고 다른 분들은 대부분 과학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었어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학예사님의 전공이 지질학이었어요.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지층을 보면서 설명해주시고, 밤에는 천문학자 이지유 선생님이 밤하늘 보면서 설명해주시고, 이정모 관장님이 자연사 이야기를 해주시고. 정말 이렇게 배웠으면 이과를 갔을 것 같다 싶은 거에요.


팀에 중학생 남자아이도 있고 출판사 분들도 계셔서 밤이면 8명이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대자연 앞에서 10대나 50대나 다 똑같은 사람으로서 감상을 나누는게 너무 좋았어요.

 

그때가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1차 수술을 받고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예약 당시만 해도 응급 상황이 아니었는데 여행갈 무렵에 응급상황이 되어서 장 관련 수술을 받으셨어요.


수술 후에 병원에 계시던 상황에서 여행을 취소해야하나, 간호하던 온 가족들에게 미안했어요. 삶이 너무 힘든 때였어요. 번아웃도 있을 때라 나 답지 않게 처음으로 '나 여행 갈래.' 그랬어요.  


* 이 여행은 서대문자연사 박물관에서 있었던 우주생물학 특강 후 일반인 대상으로도 신청을 받아 여행팀을 꾸렸다고 한다.


수영님 형제자매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3남매 중에 둘째에요. 위에 언니가 있고 밑에 남동생이 있고. 언니나 엄마나 차마 가지말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다들 지쳐있는데 나만 손든 거잖아요. 나도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그땐 절박했던 거 같아요.


공항을 가는데 내가 불효를 하는 것 같고 이기적인 것 같고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난 가고 싶고. 공항 버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했어요.


비행기를 탔는데 안내 영상에서 '반드시 본인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착용하고 남을 도우세요.'라고 나오더라고요. 그 영상에 엄마랑 아이가 앉아있는데 엄마가 먼저 쓰고 아이한테 씌어줘요. 그 비주얼이 엄청 크게 다가왔어요. 내가 행복해야 가족한테도 아빠한테도 더 잘할 수 있다고 그 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자기합리화죠. 일단 내가 살아야하니까.  


그렇게 해서 간 이 여행에서 제가 삶의 이정표라고 부르는 세 가지 메시지를 얻었어요.


밤이면 주변에 빛도 없고 별이 엄청 잘 보여요. 그 중에서도 엄청 잘 보이는 별이 있어서 '저건 무슨 별이에요?' 하고 물어보니까 '저거 별 아니야. 금성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요.


얘네가 빛나는 건 태양빛을 반사해서에요. 등급이 높은 별들도 있지만 그래도 금성이 더 예뻐요. 왜? 가까우니까. 저 멀리서 빝나는 1등급 별보다 더 빛나는 건 금성이에요. 나한테 가까우니까.  


그래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어두울 때 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빛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금성이 비너스 잖아요. 우리말로는 샛별이고. 라틴어로는 루시퍼인데 그게 빛을 몰고 오는 자라는 뜻이에요. 옛날 사람들에게도 금성이 예뻤던 거죠.


그 이후로 나도 금성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잘나고 대단한 것보다 나한테 가까우면서 잘 해주는 사람이 최고야. 가까이에서 빛을 나눌 수 있는 게 최고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게 첫 번째 메시지였어요.


호주 사막 투어 때 멋진 사진을 많이 남기신듯.


두 번째 메시지는요?


아폴로11호가 발사되고 나서 미국에서 이걸 추적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호주의 허락을 받아서 서호주 퍼스 근처에 기지국을 만들어요. 아폴로 11호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그게 버림받은 상태로 있다가 박물관으로 만들어요. 그곳을 들렀다가 가는데 아폴로 11호를 추적하던 장비들이 먼지에 쌓여있는 것을 봤어요.  


지금으로 치면 하드디스크, 메모리 드라이브 같은 것들이 예전엔 테이프 형태였어요. 그 테이프 10개 정도를 합쳐도 1기가가 안 되는 거에요. 저런 테이프와 조잡한 장비를 가지고 사람을 달에 보낸 거에요. 그게 너무 놀라웠어요.


미지의 세계에 가기 위해 정말 많은 정보를 조사해야했을 텐데 데이터를 이렇게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을 어떻게 달에 보냈을까 싶었어요.  


그때 생각한 게 중요한 건 데이터가 아니구나. 우리는 뭐든지 새로운 걸 하거나 다른 일을 하려고 할 때 자꾸 데이터를 모으려고 하고 정보를 통해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는 경향이 크죠. 하지만 중요한 건 데이터가 아니라 프린시플(principle, 원칙). 우주에서도 1+1=2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프린시플이 명확하면 데이터가 없어도 내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귀가 엄청 얇을 때였거든요. 삶이 불안하고 나 이대로 살아도 되나, 30대에 결혼도 못하고 직장은 이대로 다녀도 될까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어떻게 살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원칙이 없으면 데이터가 많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나는 어떻게 살고 싶고,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절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웠어요. 원칙이 있으면 데이터는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내 중심이 있으니까 데이터를 그에 맞게 모으고 해석할 수 있는 거에요.  


아프리카 여행 중의 수영님


마지막 메시지는요?


마지막은 카리지니 갔을 때. 카리지니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에요. 옛날 땅들은 침식작용으로 없어지거나 화산작용 등에 의해 대부분 바다 속에 있어요. 39억년 전의 땅이 내가 발이 닿을 수 있는 평평할 수 있는 곳에 있기가 쉽지 않아요.  


거의 마지막 일정이라 멤버들이랑도 엄청 친해졌을 때였어요. 함께 그곳에 서있는데 하필이면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이사람들과 39억 년 전의 땅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한, 찰나의 기적 같은 거에요. 지금 이 순간은 무조건 기적이라는 생각을 했죠.


호기성 생물이 진화해서 인간이 된 건데 진화는 다 우연이잖아요. 이런 우연 속에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에요. 우연인데 지금 상황이 너무 좋으면 기적 같고 너무 소중하고. 우연이라고 생각하니까 불안감도 덜하고 미래도 재미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이 들고.  


집에 오니까 엄마가 사람이 달라졌다고 했어요. 예민하고 날카롭고 불안해서 뭔가를 쫒고 주체 없이 많이 흔들리던 것도 많이 정리가 되었어요. 호주 여행이 삶에 큰 전환이 되었어요.


이 여행에서 느낀 감동이 너무 커서 좀더 대자연을 보고 싶어서 아프리카를 가게 되고 다시또 호주 한 번 더 가고 옐로우스톤도 가고.


* 호기성 생물 : 대사작용을 위해 산소가 필요한 생물


서수영 님의 인터뷰는

 [Part3. 취미부자, 직업부자가 되기 위한 B급 인생]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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