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쇼코의 미소>
*‘위로부적격자’는 제가 좋아하는 생활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나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위로'는 제법 중요한 이슈였다. 한껏 어른인 척 하다가도 명랑만화 같은 구석이 있는 나는 친구가 슬프면 웃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방법이 먹힐 때도 있었지만 수능점수 때문에 고민하던 친구와 이야기하던 때,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던 밤에는 역풍을 맞기도 했었다. 그런데 남자 때문에 처음 울어본 그 때, 비로소 알았다. 웃음으로 충분치 않다는 걸.
최은영의 단편집 <쇼코의 미소>를 읽다가 나의 ‘위로부적격자’ 역사가 자꾸 떠올랐다. 나는 상처받은 일보다는 상처를 준 일들이 더 선명하게, 자주 떠오른다.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준 기억은 그대로 나의 상처가 되었다.
밑바닥의 나를 보여줄 수 있었던 친구있었다. 20대 내 시간의 대부분은 그 친구와 함께 했고 난 그녀가 내 인생의 사관(史官)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나를 일방적인 통보를 당한 피해자라고만 여겼다. 상대를 향한 미움이 마음 한가득이라 보란듯이 더 즐겁게 살려고 했다. 다시 그 시기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건 2년이 지나고서였다. 서울을 떠나 비로소 내 마음에 바람이 들고 여유 공간이 생기던 때였다. 그제서야 정말 내게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었다. 나의 과실을 깨달았기에 우리 우정의 균열을 더듬어 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내가 충분히 나쁠 수 있음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찬찬히 살펴본다.
20대 후반, 우리는 많이 아팠다. 각자의 실연을 신호탄 삼아 인생의 갈피를 못 잡고 고민하고 울고 괴로워했다. 여름에 헤어진 내가 그나마 스스로를 수습하고 다시 기운을 차리던 겨울 무렵 친구는 방황을 시작했다. 그리고 봄, 우리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거실에 앉아 밖으로 보이는 먼 남산과 시원하게 뚫린 하늘을 보며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거실은 우리 둘에게 충분히 넓었고 그 공간에서 해볼 많은 것들을 계획하며 즐거웠다. 다른 생활습관으로 있을 수 있는 사소한 다툼이야 예상 못한 바도 아니었고 큰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못난 마음들이 부딪히며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친구에게 상처를 준 그녀의 가까운 사람들을 비난하며 나는 친구의 편을 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녀에겐 없고 내겐 있는 것을 자랑하는 기묘한 우월감에 지나지 않았다. 친구의 불행을 내 추락한 자존감의 주춧돌로 삼은 게 아니었나. 한편으로는 가끔 친구를 보고 있으면 내가 기를 쓰고 조금 벗어난 그 어둠의 구덩이에 다시 끌려들어갈 것 같았다.
'분명히 쇼코도 그때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쇼코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중략) 그때 쇼코가 내 말에 화를 내거나 적어도 자기변호라도 했다면 나는 내가 했던 말들로 인해 이만큼이나 상처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 이 구절을 읽을 때 한참이나 책을 덮고 있었다.
부동산 계약서에 쓰인 2년이라는 계약기간에 무색하게 우리의 동거는 반 년으로 끝났다. 이사를 해야겠다고 말을 꺼낼 때 친구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그 아이는 내게 말을 꺼냈을까. 거실에서 함께 하던 시간 말고 각자의 방에 있던 시간 동안 친구가 어떤 밤을 보냈는지 나는 모른다. 마지막으로 본 날은 나의 이삿날이었다. 물건을 챙기고 짐을 나르느라 분주했던 그날, 마지막으로 본 친구의 모습은 뒷모습이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 곁에서 위로란 그저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의 어둠을 제대로 마주하기에 나는 참 작았다.
단편집 <쇼코의 미소>에는 곁의 사람을 잃은 주인공들이 나온다. 죽음과 같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그 사람을 ‘저버린’ 이야기도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인연의 빈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비어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빈 자리엔 기억만이 남는다. 평소엔 희미하다가도 길을 걷다가 꽃무늬 스카프를 볼 때, 베키아앤누보의 꾸덕한 치즈케이크를 먹을 때, 옷장 정리를 하다가 편지함을 발견할 때면 생각나곤 한다.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 그래서 마음의 힘을 키워가고자 한다. 다시 가까운 사람의 어둠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번엔 눈 감지 않을 수 있도록, 애정 말고 다른 작은 마음들로에는 담백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내 사람들의 곁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