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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Oct 13. 2018

어쩌다 보니 반성문

영화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두 번 본 영화였다. 여러 모로 나와 닮은 이 주인공에게 이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미국 서부의 평범한 도시 새크라멘토에서 나고자란 레이디 버드가 고등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1년을 그린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두고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이름 지은 그녀는 어디서든 꼭 그렇게 불러주기를 강조한다. 핑크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깁스도, 드레스도 핑크색을 고르는 그녀는 그 취향만큼이나 원하는 것도 명확한 사람이다. 10대의 마지막 해, 그녀의 생활은 연애, 우정 등등으로 바쁘지만 무엇보다도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동부로 대학을 가는 열망에 불타고 있다. 시골을 벗어나 잡지 속에만 존재하는듯한 저 도시로 떠나고 싶다.


안정적이고 익숙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종자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건지, 내가 그랬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동네는 깔끔하게 정돈되고 안전한, 누구나 자식을 키우기 좋다고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째 답답했다. 모판의 모마냥 열맞춰 늘어선 아파트와 주차장을 보고 있으면 내 인생의 앞날도 그렇게 훤한 것만 같았다. 또 다른 가능성과 예상치 못한 만남을 위해서라면 우리 동네를 벗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언제나 집보다 바깥이 좋았고, 대학시절 몇 주씩 집을 떠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유럽여행을 할 때, 한 달을 네팔에서 머물 때도 한 번도 집이 그리웠던 적이 없었다. 나의 이런 오랜 열망은 이미 사회인이 되고난 이후인 20대 후반에서야 독립으로 이어졌다. 레이디 버드보다 훨씬 늦은 나이였다.


레이디 버드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원래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 아빠의 실직으로 엄마가 혼자 집을 부양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부의 대학이라니, 당연히 엄마는 반대한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닌데도 어린 마음은 고삐를 쥘 줄 몰라서 아빠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엄마와 싸우기도 한다. 현실적 한계들은 이렇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곤 한다. 사랑하면서도 원망하고 상처 입힌다. 내가 독립하던 무렵 우리 집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물론 그때껏 잘 키워주신 데다가 내게 어떤 책임이 얹힌 것도 아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길 일이었다. 가족의 틀을 답답해하며 집을 나갔으면서 막상 안정적인 지원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이율배반적인 자신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것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란 어려웠고 미숙한 나는 엄마에게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모르는 건 아니었다. 가진 것 중 언제나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마음을. 어려운 형편에도 안전한 곳에서 공부시키고 싶어서 사립학교에 보내고, 아웃렛에서 골라온 드레스를 딸에게 맞게 수선하려고 재봉틀 앞에 앉아 밤을 보낸 레이디 버드의 엄마가 그랬듯 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양말을 주면서도 비싼 거라고 변명하듯 괜히 한마디 덧붙이는 레이디 버드의 엄마를 보며 분명 애썼을 텐데도 미안해하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원망했건만 내가 아플 때면 가는 곳은 결국 우리 집이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둘도 없이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졌을 때 나는 엄마에게 갔다. 가라앉은 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 설명을 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넌지시 '무슨 일 있어?’ 해도 대충 몇 마디가 다였다. 그저 엄마 곁에 누워있거나 주는 대로 밥을 먹었지만 난 그걸로도 충분했다. 남자 친구에게 상처받고 엄마 어깨에 기대어 울고, 뉴욕에서 정처 없이 걷다가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메시지를 남길 때 레이디 버드 역시 어떤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세상에 다시없을 내 편이고 언제나 품을 내어주는 사람이라 우리는 설명하지 않는 걸까.


이 영화를 보고 서글퍼진 이유는 이미 집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이만큼 와버린 내가 다시 엄마 곁의 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고 싶어 몸부림치고, 집을 떠나 성장하는 한편 부모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이 성장 서사는 수많은 이야기에서 반복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수없이 읽고, 심지어 좋아했으니 진작에 착한 딸이 될 수도 있었건만 나는 집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집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레이디 버드의 엄마가 동부의 대학을 반대한 데에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딸을 품에서 놓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못지않았을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품 안의 자식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부모의 일이란 지켜보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독립을 결정했을 때,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이제 내보내면 다시는 같이 살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셨다고 한다. 그때 우리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도 서울에 있던 딸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 간다고 했을 때는 또 어땠을까. 서른을 넘긴 딸이지만 여전히 걱정하는 마음이려나. 우리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엄마 걱정을 했다. 엄마는 그것을 못내 애달파했는데 어쩐지 아주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서른 언저리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점을 정리해보고자 시작한 글인데 끝내고 보니 왜 이렇게 반성문 같은가. 내가 찔리는 게 참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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