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영화 델타보이즈에 부침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의 외침
강수진의 발입니다. 워낙 많이 회자 되었던 사진입니다. 더러는 그녀을 발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독일의 발레단에 들어가 2-3시간만 자고 지독하게 훈련한 덕분에 프리마돈가 되었다는 성공신화는 감동을 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한편으로 성공의 신화에 발광하는 카메라의 후레쉬 뒤에 있는 그늘을 보게 됩니다.
심리학자 애들러는 ‘열등의식’을 자기 갱신의 동기로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워할 수 있는 용기’는 베스트 셀러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꿈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늘 비교 대상이 되어 왔던 우리들이기에 기본적으로 열등의식은 몽고 반점처럼 가지고 다닙니다. 애들러의 긍정적 시각은 매혹적이지만 우리나라의 환경을 생각하면 녹녹치 않습니다. 저두 40이 되어서야 비교하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나를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힙합을 좋아해서 ‘쇼미더 머니’를 가끔씩 봅니다. 하지만 제목부터 선정적인 이 프로그램은 경쟁과 성공의 정글판에 뛰어 든 젊을 래퍼들의 고군분투를 잔혹하게 담아 냅니다. 치열한 래퍼들의 배틀에서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어 상대방의 약점을 물어뜯어야 합니다. 힙합의 정신이 교묘하게 왜곡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주눅들게 하는 사회의 권위와 관습에 저항 정신을 담은 힙합은 오히려 동병상련의 동지들끼리 오히려 치고 받는 격전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한 척 무장하지만 그들의 가사를 보면 위장 전술이란 걸 알게 됩니다.
뒤돌아 봤을 때
생각보다 멀리
와있었어 난 혼자였고
문득 겁이 났지
내가 날 봤을 때
지쳐있단 사실을
몰랐었어 난 외로웠고
문득 겁이 났지
넌 잘하고 있어 헷갈릴 때면
멈추지 마라 아직 할 일 많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의 사진봐
넌 동생들의 거울이자 가족들의 별
네가 잠을 줄여야만
그들이 편하게 숙면
야 이 병신아 티 좀 내지마
마음 단단히 먹어 알아 외롭지만
견뎌내야 돼
눈물 흘리냐 사내새끼가
뚝 그치고 다시 들어 책임감
eh 아무것도 보기 싫었을 때
억지로 눈을 부릅뜬 건
그냥 겁나서
덜컥 겁이 나서 그래 u eh o
아무 말도 하기 싫었을 때
일부러 목소릴 높인 건
There is no other reason
겁이 나 난 겁이 나
-송민호의 ‘겁’ 가사 부분 발췌
‘쇼미더 머니’는 눈물을 허용하면 병신이 되어버리는, 마초들을 복제 생산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입니다.
6월 초 무주 산골영화제에서 성공과 경쟁에서 밀려 나 있는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서른 후반과 40대 초반들의 친구들입니다.
일록(백승환)은 매형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입니다. 공장 한 구석 작은 방에서 숙식을 해결합니다. 어느 날 미국에서 살던 예건(이웅빈)이 찾아 옵니다. 그가 불쑥 중창대회를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오디션 광고를 냈는데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대용(신민재)이 유일한 지원자로 찾아 옵니다. 오디션 장소도 공장 작업장입니다. 4중창단이라고 하니 대용이 준세(김충길)을 끌어 들입니다. 길거리에서 아내와 풀빵장사는 하는 준세의 아내 지혜(윤지혜)는 하릴없이 후배 준세를 불러서 작당을 모의하는 대용이가 불편합니다.
든든한 후원자도 없는 이들입니다. 오직 가오(자존심)만이 남아 있어 라면을 먹고 이를 쑤시는 예건, 그리고 매형의 지청구를 못 참고 일록은 홧김에 공장을 나와 버립니다. 노래 선곡도 안되 있어 그나마 돈을 벌고 있는 대용이가 사오는 치킨과 술을 축내면서 연습시간을 채웁니다. 누가 봐도 허름한 형편에 한번도 응원을 받지 못한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자기의 꿈을 고백해보지 못했기에 한번 쯤 하고 싶다고 대용이 고백을 합니다. 그들의 노래 실력을 보면 얼토 당토 않은 꿈들이어서 부끄러웠을 겁니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걸’ 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많이 들어서 더더욱 차마 보여 줄 수 없는 꿈들이었을 겁니다. 그 묵은 꿈들을 처음으로 꺼내 놨는지 연습할 때마다 대용은 늘 양복을 입고 옵니다. 꿈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어서 일겁니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이 허름한 친구들이 펼치는 퍼포먼스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성공의 신화에 가려 자신의 꿈을 슬쩍 감추거나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꿈을 강요하는 사회와 부모의 압박에 지쳐 있는 젊은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성공의 주인공들은 늘 무언의 압박을 해왔습니다. 꿈에서 멀어지면 ‘노력’과 ‘끈기’의 부족을 들이댔습니다. 강수진의 ‘발’을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러는 성급하게 자신의 꿈을 급조해서 어른한테 보여주곤 합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포기하고 마는 꿈일 수밖에 없습니다.
꿈을 꾸기 전에 꿈을 꿀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의 토양이 중요한데 척박한 토양에 무조건 꿈의 씨앗을 뿌리는, 강박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회입니다.
헐리우드 영화의 해피엔딩은 성공의 강박을 보여줍니다. 미국 자체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영화는 인정투쟁의 선발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헐리우드 대중영화의 방식은 꿈을 성취하고 성공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기립박수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패키지 입니다. 미국에서 발달한 ‘긍정 심리학’ 또한 미국의 체질에 맞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심리학의 번성은 성공의 강박에 지쳐 있는 이들을 위로하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헐리우드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영화들도 성공의 신화를 복제해왔습니다. 교육과 사회문화의 시스템은 아메리칸 드림의 융단 폭격에 잠식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공의 신화에 갇혀 사육 당하는 아이돌 지망생들의 현실은 새삼스럽게 꺼내지 않아도 될 겁니다.
꿈찾기 영화의 방식은 대부분 능력을 감추고 살다가 훌륭한 멘토를 만나서 재기에 성공하는 방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나의 파바로티’를 참고하세요) 그래서 ‘델타 보이즈’의 주인공들은 꿈 찾기 영화에 명함도 내밀 수 없습니다. 중창단을 하기에는 턱없는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는 거라곤 열정 밖에 없습니다. 어떤 대형 기획사 영화들도 이들의 꿈을 눈여겨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돈벌이가 되지 않거니와 성공의 이데올로기를 교란하기 때문 일 겁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삼성의 광고 문구였습니다.
(이 카피를 만든 사람이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박웅현씨네요. 그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교묘하게 결합되는 바람에 천박한 우리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 문장이 되었습니다)
카피답게 삼성은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서 일류기업을 만들기 위해 무노조의 경영을 선언하고 무한경쟁의 건조한 기업환경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 광고를 생각하면 올림픽 게임에서 은메달이라도 따면 울며불며 극성을 부리는 우리의 선수들이 떠오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존재를 인정받는 사회이기에 2등과 3등은 수용할 수 없는 그들입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세계 최고로 인정 받고 싶어 에베레스트를 몇 번이고 올라가고 극지를 쫓아 다닙니다.
성공과 경쟁의 식민지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델타 보이즈’는 1등만을 강조하는 척박한 사회에서 소박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같습니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지만 그래도 어떻게 든 얼어 있는 땅을 밀고 나가는 민들레 새순처럼, 폭력적인 시선에 쫄지 말고 당당하게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큰소리가 아니라 나직하게 속삭입니다.
‘쇼 미더 머니’는 신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마지막 두 래퍼들의 결승 장면이 끝나고 우승자가 결정이 된 다음 우승자의 인터뷰가 끝나면 천장에서 돈다발이 쏟아지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삶은 그 이후로 계속된다는 걸 보여 주지 않겠다는 닫힌 결말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동화처럼 정상에 오르면 끝이라는 허구의 담론을 아직도 유치한 방식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식에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누추함에도 굴하지 않고,
꿈을 밀고 나가는,
영화 ‘델타 보이즈’가 소중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