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세상

by 오아시스

자전거를 타고영동으로 가려고 했으나 여건이 안되어 부리면 수통골 제원으로 넘어가는 3시간 코스. 동행한 샘과 탄핵 투표를 가지고 내기를 했다. 난 8:0 이분은 6:2. 혁명의 결과물을 도난 당한 예전의 역사 때문에 아직까지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내기의 결과물은 순대전골로 해소하고 다시 술자리에서 개헌파와 비개헌파로 대선 정국이 양분되고 박빙이 될거라는 이분의 예언에 태클을 걸었다. 개헌파 대선주자는 30%는 넘지 못할거라면서 예언을 하며 다시 배팅을 했다. 가끔씩 최순실이 애국자(?)라는 농담을 건네는 건 이 불공정의 역사를 흔드는 지각변동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이 희망의 증거라는 걸 말하지만 아직도 의심하는 분들이 많다.

2017. 0312. 블로그 글


3번 째 대통령 탄핵이 결정 되는 날. 나는 여의도에 없었고 집에서 목격할 수 밖에 없었다.

2016년 서울 광화문에 못 간 아쉬움 때문에 지난주에는 여의도로 가려고 했으나 요즘 바쁜 일정 때문에 몸을 생각해서 전주 집회에 참여했다.

윤석열 대선에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그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석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오늘 어머니를 모시고 사전 투표를 다녀왔다.

그동안 전화로 투표 하시라고 독려만 했었는데

예전보다 많이 굼떠지신 어머니를 투표장까지 모신 건

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대선 때문이다.

수구 기득권의 욕망이

깜냥이 안되는 후보를 밀어부친다.

언론과 종편과 지역토호세력과 사법세력까지

든든한 권력의 카르텔을 지키려고 총출동했다.

무조건 권력만 차지하려는 심뽀만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밭을 열심히 갈았다.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왜곡된 언론에 판단력이 흐려진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거짓말이 진실로 둔갑한다.

미국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넌센스를 보고

엄청 놀랐다.

그리고 4년 동안 괴로웠다.

우리도 미국의 넌센스를 따라갈까봐

이번엔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진실은 빛을 가릴 수 없다.

깨어 있는 시민을 믿는다.

그래도 혹시나 몇%의 반전 때문에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3월 9일이 끝나면

진정한 시민의 나라가 된 걸 축하 하는 자리를 갖자고 했다.

22년 0305 블로그 글

다들 패닉 상태다

탐욕을 이길 수 없었다.

나름 회망을 예고했는데

돌파리가 되고 말았다.

촛불을 믿었었다.

그래도 정의당과 합치면

진보/중도와 수구세력의 구도가

50:48이 되었다.

단일화 없이도 싸울만한 구도가 되었다.

희망의 증거다.

촛불혁명이 효과가 없던 건 아니다.

염려스러운 전망이 나오긴 하지만

조금 기다려보자

혹시 좀 더 나은 나라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일 수도

그리고 아프지 말자

술로 몸을 괴롭히지 말고

끝까지 가자--

2022년. 0323 블로그 글


그동안 진보 대통령(사실은 보수에 가깝지만 편의상)은 연합 없이 대통령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촛불 혁명 이후 문재인도 40% 정도의 득표율이었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겠지만 고진감래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희망을 걸기에는 5년의 시간은 너무 길었고 시민들은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자폭을 하는 바람에 다행이다.

종종 석열이 수구 세력을 멸종 시키는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이런 지형의 변화는 24년 총선 결과가 증명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수구 정당이 편안하게 과반수를 넘기는 게 다반사였다.

군주 체제였다면 어려웠을 게다. 다행이 민주주의 시스템이라서 시민들이 역성혁명을 할 수 있었다.

어제 집회는 광주로 가서 하고 싶었다.

5.18 민주혁명이 무도한 계엄령을 순한 게 만든 진정제였다.

그래서 소대장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절대로 시민들한테 총부리를 대면 안된다’ 라는 절절한 호소가 나올 수 있었다.

‘혁명을 피를 먹고 자란다’

이제는 피를 먹지 않아도

젊은 청춘들의 깨발랄한 밝은 혁명의 몸짓과 구호 덕분에 역사는 거꾸로 돌아갈 수 없다.

계엄령이 발동한 날부터 탄핵이 결정되기까지 우는 날이 많았다.

국회를 공격하는 계엄군에 맞선 국회의원과 보좌관과 시민들,

오토리버스 되는 현장을 볼 때마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89년 노태우 군사 정권의 군화발에 4시간 동안

보안사에서 밟혔다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고백. 시간이 갈수록 공포스러웠던 트라우마가 증폭되면서 정청래 위원의 고백은 점점 더 축축해졌다.

그리고 광장을 가득 매운 시민들의 응원봉.

석열은 우리가 만든 괴물이고 업보다.

흥분하지 말고 냉철하게 또 다른 괴물이 나오지 않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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