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들만의 리그’라도 이것만은 지켜줘

by 오아시스

계엄과 탄핵 이후 간만에 들렀네요. 살얼음 위를 걷는 나날이었지요. 아랫글은 2019년 작성한 글입니다. ^^

영화 <기생충>이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모든 국민이 국뽕이 될 수밖에 없는 결과였습니다. 이런 열광에 봉준호의 언급처럼 한 국가의 ‘로컬 영화제’ 수상 결과에 지나치게 호들갑 떤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아직도 상장과 트로피가 개인의 자존감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한몫하듯이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국가대표를 선수촌에 몰아넣고 2등이 아닌 1등의 결과물을 가져오라고 혹독하게 담금질했습니다. 이에 반해 칸느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수상의 결과는 트로피에 대한 욕망보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순수한 결정에 대한 보답이라 반갑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때마다 가타부타 말이 많습니다. 헐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 시장의 60% 잠식하고 있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라고 냉소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이런 시선과 상관없이 저는 한 지역의 ‘로컬 영화제’ 결과에 참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태클을 걸고 싶습니다. 이런 태클의 결과로 조금씩 아카데미 시상식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외국어 영화상’이 ‘국제영화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막이 없이 영어권 영화로 대상을 정하는 것까지 간섭하는 건 지나친 오지랖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아카데미 시상보다 저는 모든 언어와 다양성을 껴안는 칸느와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가 더 궁금합니다. 헐리우드가 영화를 대중적인 오락물로 만드는 데 공을 세우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불온한 이데올로기를 화면에 숨기고 인간의 진실을 가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기에 헐리우드에 대한 시선은 편하지 않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맞상대했던 작품은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었습니다. <기생충>이 아니었다면 아카데미의 주인공은 <1917>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아주 전형적인, 노골적으로 아카데미를 겨냥한 작품이었습니다. <기생충>을 계기로 아카데미 작품상의 선정 기준이 조금은 바뀔 거 같습니다. 아랫글은 몇 년 전에 봤던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 관람평입니다.

간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봤습니다. 제가 불편해 마지않던 아카데미 시상식을 찾아봤다는 건 아카데미에 많은 변화가 있어서 일 겁니다. 2 년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블랙아웃의 화이트 리스트 시상식이었습니다. 이후 회초리를 많이 맞았는지 아카데미 회원을 남미와 유럽 아시아까지 확대해서 한국 배우들도 회원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작년에 시상식 헤프닝의 주인공 흑인 게이의 성장영화 <문 라이트>가 작품상을 받았지요. 거의 흑인들만 나오는 데다가 성 소수자까지 다룬 영화인 <문 라이트>의 작품상 수상은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Me too’ 운동과 함께 블랙드레스의 물결을 이룬 2017년의 시상식은 아카데미가 조금씩 균형이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짧은 역사에 비례하는 비루한 성평등 지수와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인종차별은 공룡처럼 몸집만 거대한 미국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한쪽에선 인종차별이 다른 한편에서 인종차별을 다루는 영화가 작품상이 되는 형이하학적인 퍼포먼스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8년 작품상이 <그린 북>)


시상식과 퍼포먼스는 화려하지만, 자학과 가학이 존재하는 할렘가가 존재합니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판타지의 본부 디즈니랜드와 홈리스가 거주하는 모텔을 잘 대비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는 그들의 치부를 가리는 훌륭한 매체였고 영화가 배급되는 모든 곳에 ‘아메리칸 드림’을 전파했습니다. (<세이프 오브 워터>로 작품상을 받은 기예르모 델토로는 아메리칸 드림을 증명했다는 식의 수상소감을 남깁니다)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들은 예술과 대중성을 적당히 버무린 웰메이드 영화들의 잔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에는 아메리칸 드림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잘 반영되어야 합니다. 인물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실존 인물이 좋습니다. 게다가 결말은 기립박수 감이 될만한 성공의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참고로 아메리칸 드림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딴지를 거는 명감독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이번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존경을 표시했던 감독)는 오랫동안 찬밥신세였다가 최근에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카의 어두운 뒷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후보에 오른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입니다. 이번 시상식을 보게 되면서 놀라웠던 점은 아카데미 역사에서 감독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 딱 한 명이었다는 점입니다. 선이 굵은 영화를 만드는 <폭풍속으로>와 <허트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 딱 한 명입니다. 이런 까닭에 <레이디 버드>의 배우 겸 감독 <그레타 거윅>의 감독상 후보는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건 촬영감독 후보에 처음으로 여성 촬영감독이 선정되었다는 점입니다. 99년 동안 인종과 여성과 소수자를 배제한 아카데미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을 방증합니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파고>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수상소감이 뭉클했습니다.


-아랫글은 <허핑턴 포스트>에서 인용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클로이 킴이 하프파이프 경기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라는 말로 소감을 시작한 그는 먼저 ‘쓰리 빌보드’의 감독과 자신의 가족에 감사를 전했다. 그는 객석에 앉아 있는 남편 조엘 코엔(형제 에단코엔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명감독)과 아들 페드로를 향해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 나 역시 기쁘다”라며 이들을”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페미니스트인 엄마들이 잘 키운 두 남자들”이라고 소개했다. 하이라이트는 이후부터였다. 맥도먼드는 오스카 트로피를 옆에 내려놓은 후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부문의 여성 후보들께서 함께 저와 함께 일어서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메릴,(메릴 스트립) 당신이 일어나면 다들 일어날 거예요. 제작자, 감독, 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여러분 어서요 !” “메릴 , 당신이 일어나면 다들 일어날 거예요. 제작자, 감독, 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여러분 어서요!”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자 맥도먼드는 장내를 향해 ”주위를 둘러보라”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어요. 뒤풀이 모임에서만 우리와 영화 이야기를 하지 마세요. 며칠 안에 우리 사무실이든, 여러분 사무실이든 편한 데서 만나요.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에게 오늘 밤 남기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포함 조항 (inclusion rider)’”

*‘포함 조항 (inclusion rider)‘은 배우가 영화 출연 계약을 하면서 계약서에 ‘해당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나 스태프의 다양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영화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기 수월한 스타급의 배우들이 활용할 수 있는 조항으로, 백인이 아닌, 여성 및 성 소수자 등 영화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이들의 비율을 일정 부분 유지할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다. 오스카 시상식은 수상자와 후보자들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가장 힘 있는 제작자와 투자자, 감독들이 오고 또 주목하는 곳이다. 그 현장에서 계약서, 돈과 관련한 구체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