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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by 오아시스


동네 근처 독립영화관에서 소마이 신지 감독의 <태풍클럽>과 <이사>를 연속 상영한다길래 간만에 작정하고 갔다. 하지만 두편을 연속으로 본다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첫 영화 <태풍클럽>에서 겸손하게 꾸벅거리는 바람에 <이사>를 볼 때는 맑고 개운한 기분으로 영화를 주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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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사> 첫장면에 등장하는 삼각형 식탁은 가장 강력한 미장센이다. 딸 ‘렌’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부부는 꼭지점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게 아니라 딸을 사이에 두고 점점 더 벌어지는 형국이다. 자기 삶을 꾸리기도 어려운 아버지는 이혼을 선언했지만 이사도 혼자 하지 못하고 후배 커플이 대신해주고 있다. 그는 포켓 위스키를 들고 벚꽃 나무 아래에 누워만 있다. 자아성찰이 늦은 남자어른들이 사회의 압력 때문에 가족 구성을 준비하는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엎지러진 물을 주워 담기 위해 어린 딸 '렌'은 쉴새 없이 달린다. (영화 포스터 참고) 한쪽 팔은 엄마를 다른 쪽 팔은 아버지를 붙잡고 있는 '렌'의 노력과는 달리 부모는 같은 극처럼 밀려나고 '렌'의 안간힘은 갈기갈기 찢어질 지경이다.


<이사>는 어린 시절에 부모들이 싸울 때마다 툭툭 내뱉는 이혼에 대한 공포를 잘 표현한 영화다. 누구나 경험했던 공포였다. 애착 형성이 영글지 않은 상태에서 듣게 되는 이혼이란 단어는 어린 자식들에게는 어퍼컷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혼하면 안된다는 계몽스러운 결말로 끝나지 않아서 좋았다. 좋은 영화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나쁜 영화는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준다.


산업화 시대에는 삶의 조건이나 태도보다 생존이 먼저여서 세심하게 관계의 구성을 고민하지 않고 국가의 가족 계획이나 가문의 영광을 잇기 위해 가족 계획에 참여했다. 게다가 학교에서 배워야 할 자아 성찰을 자식을 낳으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이어서 성찰을 하는 부모를 만난 자녀들은 다행이었지만 철이 들지 않은 어른아이들이 구성한 가족은 난장판이었다. 그래서 다들 소설 한 편 분량의 드라마틱한 삶을 껴안고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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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까지 주인공 '렌'과 함께 바쁘게 달리던 영화는 지역 축제 장면부터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디세이처럼 밤을 세우며 순례를 하던 주인공은 새벽 호숫가에서 불타는 배를 마주하고 마침내는 또 다른 자아를 껴안는다. 성장영화의 기본 골격이지만 중반까지 보여준 '렌'의 안간힘 때문에 마무리는 뻔한 클리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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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해독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는 마지막에 친절하게 주인공이 스스로를 설득하는 씬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이혼을 맞이한 어린 당사자들에게 친척이나 이웃들이 건네는 설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는 오히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보면 더 신중하게 가족을 구성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자녀들의 트라우마가 염려되어 억지로 가족을 유지하는 건 더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나아요'라고 자녀들이 먼저 하소연하는 경우를 종종 듣는다.


영화 <이사>처럼 부모의 이혼을 지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부림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대부분 무기력거나 혹은 맨붕 상태의 리액션이 클로즈업되었고 이혼 당사자들의 심리묘사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루벤 외스클룬드 감독의<포스 마쥬어:화이트 베케이션>은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서 남편이 보인 비겁함 때문에 균열이 생긴 부부들을 보던 자녀들의 리액션은 공포스런운 표정이나 눈물이었다.


‘렌’을 찾아 헤매던 엄마를 보자 ‘렌’은 그런 엄마에게 빨리 어른이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숨어버린다. 영화 <늑대아이> 유키도 폭우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한 채 친구 쇼헤이와 학교 복도를 헤매던 중 거울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우리는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고 어른이 되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어른들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처리할 수 있는 방어기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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