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운 Jul 05. 2019

첫 롤



첫 롤로 기억합니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첫 롤입니다. 렌즈는 50mm입니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노출값도 바늘로 대충 알려주는 수준의 수동 카메라였습니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때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셔터스피드에 대한 기준도 없었고, 심도를 결정하는 조리개의 f/number는 그냥 적정 노출을 맞추기 위한 다이얼에 불과했습니다. 어떻게 동시에 3개의 링을 조작해서 찍었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 수동으로 링을 돌려서 초점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내 눈에 의지해서 선명하게 상이 맺히는 순간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동시에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링까지 돌려야 바늘을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카메라와 불규칙한 호흡으로 숨을 멈추어 초점 링을 좌 우로 돌려 맞추고 찍었습니다. 어쩔 때는 초점 링을 돌리면서 매우 빠른 호흡으로 셔터를 눌렀을 때의 쾌감이 생각납니다. 발과 몸, 손과 눈이 머릿속에서 계산된 지시사항보다 먼저 반응하고 움츠립니다. 주저 없이 셔터를 깊게  누르고 나면 몸의 경직은 풀리고 다음 순간을 위해 한컷을 다시 장전합니다. 아주 멋진 사진작가가 된 기분입니다. 디지털카메라의 셔터 소리와는 다릅니다. 기계식 카메라가 만들어 주는 셔터 소리와 미러 충격은 지금 카메라에 비하면 가히 충격적입니다. 반셔터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띠릭' 같은 소리는 없습니다. 가볍게 셔터 버턴을 누르면 안 됩니다. 깊게 눌러주면 '찰칵'이 아니라 처~얼~컥 하고 깊게 울립니다. 연사는 불가능합니다. 한발 한 발씩 장전해서 슈팅해야 합니다. 근데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란 겁니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최고의 사진작가로 만들어 줍니다. 바로 볼 수 없는 대상은 판타지(fantasy)를 만듭니다.


사진을 공부하고 상업현장에서 수많은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비교적 기술적으로 충만한 지금은 오히려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한 컷을 찍기 위한 몸의 움츠림과 긴박한 호흡이 없습니다. 셔터가 풀려나간 후의 내 몸의 릴리즈(release)가 없습니다. 그때는 머리보다 몸이 빨랐고, 그래서 생각하기보다 미리 만나고 느꼈습니다. 지금의 몸은 한없이 느립니다. 머리는 어떠한 것에도 셔터를 잘 풀어주지 않습니다. 지금의 사진은 나를 그리 오래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진은 구글맵으로 세계 여행하는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